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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인기 작가] 4. 노경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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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은 리얼리즘을 내세우는 작가다. 자신의 과거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계동 아이들'(시공주니어), 1960년대 서울 풍경이 녹아 있는 '복실이네 가족사진'(산하), 신도시가 건설될 즈음의 일산.파주의 원주민 모습을 그린 '심학산 아이들'(사계절) 등.

실제로 작가 노씨가 살아온 궤적을 따라 서술되고 있는 이 소설들에는 30.40대 독자들의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에피소드가 쉴새 없이 나온다.

사진관에 가서 가족 사진을 찍으며 뒷 배경으로 창경궁.덕수궁.뱃놀이 풍경같은 그림을 고르고('복실이네…'), 곤달걀(부화하지 못한 달걀)을 간식거리로 팔고('상계동…'), 선생님이 찾아간 아이의 집이 스레이트 지붕으로 되어있고 집 앞 채마밭에는 고추.깻잎.콩.옥수수가 심어져 있는('심학산…') 모습들이 그렇다.

작품 속 인물도 펄펄 살아 움직인다. 가난한 사람들 상대로 돈을 빌려주고는 "콩밥 먹을줄 알라"고 협박까지 해가며 꼬박꼬박 이자를 받아내는 할머니, 없는 살림에도 더 어려운 이웃에게 빨갱이(금태라는 생선)와 미더덕을 싸줄줄 아는 후덕한 생선장수 아줌마, "무당 아들"이라는 말만 나오면 사생결단하고 싸우는 깐돌이같은 인물들이 그들이다.

작가는 이름만 바꾸었을 뿐 자신의 삶에서 스쳐갔던 인물들을 소설에서 되살려낸다. 작품에 따라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1958년생인 작가는 인생의 연륜도 있지만, 스스로 밝히듯 삶의 굴곡이 많아 경험이 다양하다. 도시의 어려운 계층과 부대끼던 생활, 사남매 맏이로 일 나간 엄마 대신 살림을 도맡던 유년기처럼 남들은 하기 힘들었던 경험을 겪었다.

그것이 다 소설 밑재료로 쓰인다. 자기 이야기인만큼 서술이 시원하고 '진짜'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노경실 동화의 강점이다.

다작 작가인 그는 성장 고백 같은 작품뿐 아니라, 성인이 되고난 뒤 관찰한 요즘 아이들에 대한 작품도 상당수 썼다.

신간 '새벽을 여는 아이들'(계림북스쿨)에서는 과부가 된 어머니가 여성지 편집장으로 제대로 월급 받으며 가족을 부양하지만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돕겠다고 신문배달을 하는 효준이가 주인공이고, '열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푸른숲)에는 "왜 그러세요, 엄마는 교양도 없이…"라며 대드는 당돌한 도시 소녀 희진이가 나온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의 악다구니나 생활의 곤궁함은 없다. "이제는 평범한 모습이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런 요즘 아이들 이야기보다 노경실의 글은 자기 고백적 소설에서 더 빛을 발한다.

할 말이 너무 많아 구성이 거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큰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발랄한 모습을 그리는 부분에서 그 특유의 흡인력이 발휘되길 기대해 본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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