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마음에 위로가 되는 한국의 단골집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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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마크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마크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이번 설 연휴 때 서울에서 혼자 며칠을 보내다 매우 편안하며 매력적인 한국 문화의 한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단골집 문화’다. 명절 당일에는 친구 가족의 집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 명절 음식을 맛보았다. 혼자 지낼 수밖에 없었던 나머지 날에는 친구인 전일찬 셰프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을 여러 차례 찾았다. 전 셰프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바 형태의 테이블에 혼자 앉아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이 없었다면 외로운 연휴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한국의 단골집 문화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마음에 위로가 되는지를 깨닫게 됐다. 특히 나처럼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영어에는 “나는 이 식당 단골이다(I’m a regular at that restaurant)”처럼 단골이란 말은 있어도 단골집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다. 어떤 식당을 자주 찾게 되면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주인이나 셰프와도 알고 지낼 수 있다. 그러나 단골집이란 말은 이런 관계보다 훨씬 친밀하고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의 보통 단골집에는 주인·셰프·직원을 겸하는 할머니 한 분이 언제나 자리를 지키게 마련이다. 손님들이 그냥 “두 그릇 주세요”라고만 해도 할머니는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아챈다. 대다수 한국인 친구는 단골집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기쁜 마음으로 나를 데려가 추억이 담긴 음식 맛을 보여준다. 또 다른 친구들은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양 단골집 정보를 꼭꼭 숨긴다. 드물게 데려간 친구에겐 “여기가 서울에서 최고로 맛있는 식당인데 나만 아는 맛집이야. 아무나 데려오지 않아”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사실 단골집이 주는 이런 친밀함이야말로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매우 소중하다. 한국에 갓 도착한 외국인은 대개 한국말도 서툴고 친구도 없이 혼자 지내기 일쑤다. 힘들게 마련인 이럴 때 나를 알아봐 줄 뿐 아니라 어설픈 한국말도 이해해 주고 항상 미소 지으며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 주는 주인이 있는 동네의 작은 식당은 위로가 된다. 특히 친구들도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린 명절이나 연휴 때 이런 단골집은 나를 반겨 주고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 주며 가끔은 서비스도 내놓고 친근한 대화로 이끌어 준다. 낯선 곳에 적응해 가는 외국인이 기댈 수 있는 아늑한 언덕이다. 언젠가 한국에서의 추억을 되새기게 되면 단골집에서 만났던 여러 얼굴과 음식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단골집 문화야말로 한국의 숨은 매력이다.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