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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텐트 친 반기문, MB 찾아간 유승민…보수적통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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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1일 오후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반 전 총장이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1일 오후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반 전 총장이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 후 지지율이 답보 내지 하락세를 보이면서 ‘보수 쟁탈전’이 가열되고 있다. 31일 공개된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세계일보 의뢰)에서 반 전 총장은 13.1%까지 지지율이 떨어졌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8.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반 전 총장이 허점을 보이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 다른 보수주자들도 ‘보수 적통’을 내세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지지율 하락 반, 개헌협의체 제안
“촛불 민심 변질됐다” 발언 또 논란
유, 10년 된 ‘MB 저격수’ 앙금 씻어
MB계 진수희 이어 김영우도 합류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의 김미현 소장은 “반 전 총장이 왜 보수의 대안인지는 보여주지 않고 정치공학적 연대에 매달리면서 황교안 권한대행이 보수층에서 ‘포스트 박근혜’로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고 분석했다. 정치컨설팅업체 민의 박성민 대표도 “반 전 총장이 개헌을 고리로 빅텐트에 매달리는 건 신기루를 쫓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오전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왼쪽)은 서울 대치동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을 찾았다. 이 전 대통령이 유 의원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같은 날 오전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왼쪽)은 서울 대치동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을 찾았다. 이 전 대통령이 유 의원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유승민 의원은 반 전 총장의 이런 약점을 정면으로 노렸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단장으로 ‘MB 저격수’로 불렸던 그는 3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가 10년 만의 화해를 성사시키면서 보수 행보를 강화했다.

이 전 대통령은 유 의원에게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했다고 해도 다 잊고 다 씻어버렸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또 “요즘 국민의 삶이 어렵고 힘드니 전문성을 잘 살려 국민이 푸근하고 따뜻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잘 이끌어 달라”는 말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10년 전 MB계였다가 최근 유승민 캠프에 합류한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 김영우 의원을 보면서 “참모진을 보니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모은 것 같다. 믿음이 간다”는 덕담도 했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부인 손명순 여사에게 큰절을 했다. 유 의원은 지난달 30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이길 수 있는 보수 후보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며 ‘보수 후보 단일화’를 선제 제안해 반 전 총장을 압박했다.

같은 당 남경필 경기지사도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을 선거캠프 총괄본부장에 임명하면서 반 전 총장과 당내 경쟁 상대인 유 의원을 동시에 견제했다. 정 전 의원은 반 전 총장을 향해선 “일찌감치 종쳤다. 필패하는 후보”라고, 유 의원을 향해선 “무난하게 지는 후보”라고 혹평했다. 52세인 남 지사는 “보수의 새로운 구심은 정치의 세대교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세대교체론을 주장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개헌을 통한 반문연대에 매달렸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 유력주자는 ‘지금은 개혁할 때지 개헌할 때가 아니다’고 하는데, 개헌보다 더 중요한 개혁이 어디 있느냐”며 “대선 전 개헌을 위한 개헌추진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입당이나 창당 여부에 대해선 이른 시일 내 결단을 내리고 언론인 여러분에게 가장 먼저 알려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 측 핵심 관계자는 “정당·정파를 초월한 개헌추진협의체를 만들자는 제안은 기존 정당에 입당하겠다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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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 전 총장이 간담회에서 “촛불 민심이 변질됐다”고 한 발언이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그는 “광장의 민심으로 표현된 국민들의 여망은 지금 쌓인 적폐를 확 바꾸라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며 광장의 민심이 초기에 순수한 것보다 약간 변질된 면도 없잖아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개헌연대 대상인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즉각 입장 자료를 내고 “‘광장 민심이 변질된 측면도 있다’는 발언은 심각한 문제”라며 “개헌협의체에 새누리당을 제외하지 않는 등 모호한 정체성만큼이나 개헌에 대한 진정성도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반 전 총장이 트릴레마(trilemma·삼중고)에 빠졌다”는 쓴소리가 지지그룹 내부에서 나온다. ▶빅텐트에 매달리다 보니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반반(半半)의 정체성으로 보수지지층을 잃었고 ▶친문 의원 70여 명의 지지를 받는 문 전 대표와 비교해 원내 세력화에 실패하고 있으며 ▶외교관 출신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인으로서 콘텐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유미·허진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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