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리포트] 다이어트 4일째 햄버거에 굴복, 나 어떡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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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설은 축복이다. 가족과 친지,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명절 고유의 즐거움이 크다. 무엇보다 음력 설이 있어 우리는 새해를 두 번 맞이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흔한 덕담도 두 번씩 주고받는다.

이제 진짜 정유년, 다시 스타트!
살 빼려고 안 먹으니 일 집중 안 돼
탄수화물 중독 치료부터 받기로
술이 센 여자친구 만나 다시 과음
‘만취 금지’ 함께 노력하자고 약속
사놓은 다이어리 포장도 안 뜯어
1주일 단위로 부담 줄여 쓸래요

해가 바뀔 때 야심 차게 그렸던 신년 계획이 물거품이 됐더라도 음력설을 즈음해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다.

많은 2030세대는 2017년도 여느 때처럼 작심삼일로 시작했다. 다이어트나 어학공부, 독서, 심지어 연애까지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청춘리포트팀은 새해 다짐을 이어가지 못한 청춘 6명의 ‘작심삼일(혹은 작심 6시간, 작심 일주일) 이야기’와 실패한 이유를 들어봤다.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또 다른 새해인 설을 기점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취업준비생 김철은(26)씨는 다이어리를 충실히 쓰면서 꼼꼼하게 일정을 기록해 계획적인 일상을 보내겠다는 게 새해 목표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받아 둔 다이어리는 포장도 뜯지 못한 채 책상에 놓여 있다. 김씨는 “새해가 되면서 올해는 1년 계획도 제대로 세우고 운동 시간이나 일상을 기록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려고 했는데 못 지켰어요. 스마트폰에 일정을 간단히 적어놓는 습관이 들어 막상 꼼꼼하게 수기로 기록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다이어트는 딱 3일 갔어요. 작심삼일이란 말이 무섭게, 4일째 되는 날 햄버거를 먹어버렸거든요.”

장민지씨가 세운 새해 목표들. 그는 “설 이후부턴 목표를 현실적으로 바꿔 재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민지씨가 세운 새해 목표들. 그는 “설 이후부턴 목표를 현실적으로 바꿔 재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장민지(27·여)씨는 1월 1일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그러나 3일을 버티다 햄버거 세트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장씨는 “세 가지 목표를 정했는데 다이어트는 작심삼일,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는 시작도 못했고 이직 준비도 마찬가지예요”라며 한숨 쉬었다. 장씨가 진단한 실패 원인은 의지 부족이었다. 장씨는 “연초라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도 받으니까 ‘좀 쉬면서 맛있는 것도 먹어야 한다’고 스스로 합리화했어요. 결국 핑계였죠”라고 말했다.

식습관을 바꾸는 건 의지의 문제이기만 한 건 아니다. 때론 중독의 문제이기도 하고, 주변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원 진학과 국제기구 취업을 준비 중인 이소정(26·여)씨도 올해는 반드시 식습관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지만 첫날 실패를 맛봤다. 프랑스어 실력 향상과 같은 중기 목표는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지만 식습관 개선은 달랐다. 그는 “밀가루 음식을 너무 좋아해 거의 탄수화물 중독같이 느껴졌어요. 안 먹으면 집중도 안 되고 일도 잘 손에 안 잡히고. 새해에는 밀가루 음식을 절대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짐한 지 6시간 만에 또 먹고 말았어요. 중독이 되니까 금세 의지도 약해지고 끊기가 힘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연구원 강동재(33)씨는 새해 목표가 환경에 의해 깨진 경우다. ‘썸녀(아직 사귀지는 않지만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여성)’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새해 목표 중 하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강씨의 올해 목표는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것과 술에 취하지 않기, 다이어트, 운동 3가지 배우기,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였다. 강씨는 “부모님이나 친척들의 걱정이 커서 올해엔 결혼할 사람을 만나려고 했어요. 또 다른 야심 찬 목표는 ‘취하지 않기’였죠. 만취한 다음날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 모습이 부끄러웠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는 취할 때마다 3만원씩 기부하기로 혼자만의 벌칙도 정했다.

그런데 최근 썸녀를 만나며 계획이 틀어졌다. 강씨는 “최근 만나는 썸녀가 술을 정말 좋아해요. 더 큰 문제는 저보다 술이 세다는 거죠. 같이 마시면 저만 취해요. 술을 줄이려고 다짐해도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워 매번 실패하고…. 한 달도 안 됐는데 ‘만취 적립금’이 15만원 쌓였어요”라고 말했다.

서유지씨는 다이어리에 하루의 제목을 달아 일기를 쓰고, 의미를 돌아보는 것을 새해 목표로 정했다.

서유지씨는 다이어리에 하루의 제목을 달아 일기를 쓰고, 의미를 돌아보는 것을 새해 목표로 정했다.

취업시장에서 분투 중인 취업준비생들도 새해 목표를 실천하기 쉽지 않다. 취업준비생 서유지(26·여)씨는 매일 일기를 쓰며 하루를 돌아보고, 지나치기 쉬운 일들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았다. 그는 “취업 준비를 오래 하다 보니 하루가 너무 소모되는 것 같고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매일 일기장에 그날 하루의 제목을 달고, 경험하거나 생각한 것들 중 중요한 걸 찾아 기록하기로 했죠. 4일 정도 실천했는데 뭔가 삶을 의미 있게 보낸 것 같아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 토익시험이란 현실의 벽이 닥쳐왔다. 미뤄뒀던 운전면허시험도 쳐야 했다. 서씨에겐 일기를 쓰며 하루를 되새기는 시간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서씨는 “토익시험 날짜가 다가오고 조급해지니까 글을 쓸 여력이 없어졌어요. 시간이 있었지만 잠시 쉴 시간이 생기면 그냥 TV 앞에 퍼질러 있게 되더라고요. 그냥 눈뜨면 공부하고, 목표한 건 전부 사라져버렸죠”라며 아쉬워했다.

방상은씨는 다이어트, 영어공부 등을 목표로 잡았다. 작심삼일을 면하기 위해 일기를 쓰며 노력 중이다.

방상은씨는 다이어트, 영어공부 등을 목표로 잡았다. 작심삼일을 면하기 위해 일기를 쓰며 노력 중이다.

회사와 업무 일정에 맞춰 생활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도 방해요소가 많다. 방상은(28·여)씨는 지난해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다가 실패한 목표들을 올해 다시 지켜보기로 마음 먹었다. 다이어트와 영어공부, 악기 배우기, 업무 실력 높이기 등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나태함이지만 회사 다니면서 지키기 어려운 부분도 많아요. 식습관을 바꾸고 다이어트를 하려 해도 회식이 잡히면 빠질 수도 없고, 그러다 다음날 또 약속이 잡히면 이틀이 날아가는 거죠. 영어공부도 일이 항상 같은 시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학원 등록하기도 어렵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심삼일로 빠지는 이유도 다양하고 장애물도 많지만 이들은 설을 맞아 또다시 ‘작심’을 하고 나섰다. 먼저 상황에 맞춰 목표를 조정하거나 실천 계획을 세부적으로 나눴다. 장민지씨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욕심 안 부리고 한두 가지라도 지키려고 하면 성과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다이어리 포장을 뜯지 못한 김철은씨도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워서 다이어리를 쓴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됐던 것 같아요. 설이 지나면 한 달 단위로라도 계획을 세우고 자꾸 쓰는 버릇을 들이려고 해요”라고 다짐했다.

이소정씨는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초강수를 둘 생각이다. 한의원을 찾아 밀가루를 절대 먹으면 안 되는 약을 지어 복용하기 시작했고, 치료도 병행하기로 했다. 강동재씨는 썸녀를 설득해 함께 술을 줄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서유지씨와 방상은씨는 한 달간의 실패를 거름으로 삼고 있다. 서씨는 “목표를 포기한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또 일상이 반복되고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허무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이겨내고 다시 새해 목표를 실천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방상은씨는 “매일매일의 목표를 만드니까 강박관념 때문에 하루라도 안 지키면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이제는 일주일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부담을 줄이고 조금씩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힘을 얻으려고 해요”라고 다짐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조언을 내놨다.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목표를 세울 때 토익 몇 점, 살 몇 ㎏ 빼기처럼 결과에만 집착하면 이루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결과 자체보다 과정에서 작은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목표로 가는 길을 직선으로 정하기보단 그 중간에 여러 생각이나 습관, 삶의 변화들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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