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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국영 칼럼

제4차 산업혁명과 한국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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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경제포럼의 창시자인 독일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가 국내에 출간된 이후 ‘제4차 산업혁명’이 핫이슈화로 떠올랐다. 대선주자들도 정책·공약과 관련해 이를 언급하고 있다. 인류역사 최초로 영국에서 기계가 생산에 도입된 18세기 제1차 산업혁명, 전기력에 의한 포드주의(Fordism) 대량생산이 개시된 1920년대 제2차 산업혁명, 전자기술의 도입으로 생산의 자동화가 시작된 1970년대 제3차 산업혁명의 뒤를 이어 현재부터 전개되는 기술혁명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여소야대 상황은 계속 상수로 남아
원내 소수파의 정책추진엔 한계
누가 되든 연정해야 위기 극복 가능
재벌개혁 공약도 대연정으로 풀어야
4차 산업혁명의 리더십에도 필수적

물론 ‘제4차 산업혁명’ 개념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이미 산업화 시대가 지나가고, 이젠 정보화 시대인데 또 몇 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보다는 ‘인더스트리 4.0’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인더스트리 4.0의 추진과 결과가 전통적 의미의 산업혁명이 될 수 있는가라는 회의도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혁신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독일의 새로운 현대 산업정책이다. 기민·기사연합-사민당 대연정의 ‘독일의 미래를 형성한다(2013년)’라는 연정합의문은 전략적 혁신정책을 위해 광범위한 영역을 관장하는 인더스트리 4.0을 특별히 강조한다. 인더스트리 4.0은 우선 전통적 산업의 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미래 프로젝트이며, 그 다음 ‘스마트 서비스’로 확대하고 또한 친환경 IT분야를 강화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현대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목표는 생산성 향상과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하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2014년 발표된 백서엔 인더스트리 4.0의 진행에서 독일 중소기업(Mittelstand)의 역동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대연정으로 구성된 연방정부가 중심이 되어 주정부, 경제계, 학계와 공동으로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정책의 가시적 효과는 향후 20∼30년 이내에 드러나고, 그 영향은 경제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 4.0’, ‘노동 4.0’과 같은 새로운 개념도 논의되고 있다.

그럼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야기할 제4차 산업혁명의 파장은 무엇인가? 모든 산업혁명의 기본적 특성은 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이다. 과연 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은 언제나 인류에게 축복이었을까? 아니다. 제2차 산업혁명은 1930년대 대공황을, 제3차 산업혁명은 2008년 이후 글로벌 장기불황으로 귀결되었다. 생산성 향상이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이유는 개별 국가 및 전세계의 생산능력과 소비능력(대중의 구매력)의 괴리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생산성 향상의 정도에 비추어 소득 양극화 때문에 소비위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제4차 산업혁명의 진행·파급 정도도 각국마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제2,3차 산업혁명을 뒤쫓아 갈 수 있었지만, 과연 제4차 산업혁명에 편승하거나, 이를 추격할 수 있을까? 먼저 한국이 처한 다중적 위기를 정리하고, 그 다음 제4차 산업혁명이 한국 정치에 주는 함의를 살펴보자.

한국은 현재 다중적 위기에 처해 있다. 첫째는 경제성장률이 2%대로 하락하고, 과거와 달리 반등력이 매우 허약한 경제위기다. 사실상의 실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450만을 넘어섰다. 둘째는 북핵의 실전 배치가 임박한 안보위기다. 셋째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 발 대외적 폭풍, 특히 보호무역주의 경향이다. 넷째는 이러한 위기에 대처·타개해야 하는 정치의 위기다.

87년 체제 성립 이후 이러한 위기들이 동시에 집중된 적은 없었다. 여기에 앞으로 독일이 선두가 된 제4차 산업혁명의 진행과 결과가 점차 부가될 것이다. 과연 한국이 제4차 산업혁명에 편승해 제조업의 디지털 혁신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다행히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감소와 소비절벽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한국 정치에 주는 함의를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검토해 보자. 첫째 인더스트리 4.0은 대연정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연방정부가 주도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가 필수적이다. 작년 10월 한국을 방문한 슈밥은 "한국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좋은 기반을 갖추고 있지만,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대기업이 재구조조정을 거쳐 중견·강소기업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슈밥은 올해 1월 17일 한 독일 지방신문(Hamburger Abendblatt)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스위스에서 최근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국민투표에서 찬성 23%로 부결되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10년 내에 훨씬 확산되리라고 보았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보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특히 단순노동 분야에서 훨씬 많기 때문에 ‘복지국가 4.0’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한편으로는 재벌개혁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주로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해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더스트리 4.0을 추격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생관계의 확립이 필수적으로 추가되어 역동적인 중소기업부문의 공간이 확대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선주자의 일부는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조세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차기대선 이후 누가 집권하더라도 불을 보듯 뻔한 정세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물론 대선주자들도 이런저런 연정을 언급하지만, 원내 가중다수의 확보도 어려운 소연정에 불과하다. 여소야대와 국회선진화법에 직면한 신임 대통령이 다중적 위기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재벌개혁과 조세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신임 대통령이 어떤 전략을 선택하더라도 적대와 투쟁의 정치라는 구태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직면한 미증유의 다중적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대선 이후 거국정부의 수립이나, 최소한 일부 야권 대선주자가 주장하는 공동정부의 구성이 요청된다. 그래야 다중적 위기의 전부는 아니라도 일부라도 타개할 단서가 열릴 것이다.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본 칼럼은 외부필진에 의해 작성된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