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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요즘 청소년 정치 소신 뚜렷" vs "고3 교실 정치판 변할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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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NIE

18세에 선거권 줘야 할까요 국민은 흔히 ‘유권자’(有權者·권리를 가진 사람)로도 불린다. 여기서 권리란 선거권, 즉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대표자를 선출할 권리다. 이점에서 선거권은 현대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선거권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게 기본이다. 모든 국민이(‘보통 선거’) 똑같이 한 표(‘평등 선거’)를 행사한다. 그런데 국민 누구에게나 나이에 상관없이 선거권이 주어지는 아니다. 한국에선 만 19세부터 선거권을 가진다. 이를 만 18세로 낮추자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는데 이에 대한 찬성·반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각각의 근거를 살펴보자.

틴즈디모(국정화 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회원들이 만 18세 선거권 부여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년 정치 참여권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틴즈디모(국정화 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회원들이 만 18세 선거권 부여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년 정치 참여권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오스트리아는 16세에 선거권=선거권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국민에게 주어진다. ‘어느 정도의 나이는 되어야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나라마다 선거 연령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역사적 배경, 사회 환경, 교육 시스템이 나라마다 달라서다.

신문 활용 교육

한국에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 당시 만 21세 이상을 유권자로 정했다. 이후 1960년에 민법상 성인의 기준인 ‘만 20세’부터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2005년 선거법 개정 이후 현재까지 만 19세부터 선거권을 갖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19세 선거권’은 한국이 유일하다. 32개국은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주고, 오스트리아는 16세부터 선거권을 인정한다. 가까운 일본도 20세이던 선거 연령을 2015년 18세로 낮췄다. 심지어 북한은 17세부터 선거를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최근 ‘선거 연령 18세’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새누리당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선거 연령 하향’을 찬성하는 쪽에서 ‘촛불 집회 속 교복’을 근거로 든다. 찬성 측은 ‘촛불 집회에 나선 청소년들은 진지하고 뚜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줄 안다’고 본다. 고교생 중 다수도 이런 시각에 공감한다. 청소년들은 이미 정치 뉴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의견도 적극 내놓고 있다.

OECD 34개국 중 19세 부여 한국뿐
"나라 미래 짊어질 청년 정치 참여 필요"
"정치·시민 교육 선행돼야" 반론도

스마트폰에 주요 신문의 사설을 추천해주는 어플을 깔아놓는가 하면 소셜미디어에서 정치 뉴스를 스크랩하고 댓글로 자기 의사를 표시한다.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며 시사예능 방송프로그램인 ‘썰전’을 시청하는 청소년도 많다. 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어른도 많다. 오히려 청소년이 정치 이슈에 훨씬 관심이 많다. 그런 우리들에게 선거권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한울 고려대 연구교수는 “정치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자연스럽게 사회화 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 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쪽에선 “만 18세는 아직 고교를 졸업하지 않는 나이”라는 걸 강조한다. 18세 학생들은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 아직은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엔 어렵다는 논리다. 또 “선거 연령을 낮추면 자칫 고3 교실이 혼란스러운 정치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OECD 국가는 18세가 되기 전에 고교를 졸업한다”고 주장한다.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의 김동석 교권정책본부장은 “고3 교실의 정치 선거장화를 막을 법적 근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선거 연령 하향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올해 만 18세 61만 명의 특징은=정치권에서 선거 연령 하향을 놓고 입장이 갈리는 건 ‘표 계산’ 때문이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서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2002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보다 57만 표를 더 얻어 당선됐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39만 표 차이로 이겼다. 이런 만큼 18세 청소년의 표가 올해 대통령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8세가 되는 1999년생은 61만2000명이다. 정당마다 18세의 표심을 잡을 수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1999년생은 올해 고3이 되거나 고교를 졸업한다. 소셜미디어에 능숙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라 불린다. 이들이 10대가 되던 해인 2009년엔 스마트폰이 나왔다. 또 중학생이었던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었다. 이후 정치가 단지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며 자신의 삶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등장하면 소셜미디어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촛불 시위 때 교복 차림의 중고생이 거리낌없이 자유발언대에 올라 정치와 시민정신을 논하고 시국담론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선거는 미래를 결정하는 일=선거 연령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단지 정치권의 표 계산 차원을 넘어선다. 선거 연령을 조정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에 있다. 통계청은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를 707만6000명으로 예상했다. 고령 인구는 2020년에 813만명을 넘어 2025년엔 1000만명을 돌파한다. 유권자 중 고령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고령층을 위한 정책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정치권이 고령인구의 표심을 잡는데만 매달린다면 자칫 청년의 미래를 위한 정책은 등한시할 수 있다.

정치권이 청년을 위한 정책 마련에 고심하게 하려면 유권자 중 젊은 층이 많아져야 한다. 일각에서 ‘인구의 고령화 속도와 청소년의 정치적 각성 수준을 고려하면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18세는 학창시절에 정치·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사고를 경험해 정치적 학구열이 누구보다 높다. ‘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고 아직 판단력이 미숙해 투표권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얘기한다.

18세에 선거권을 부여하기에 앞서 정치와 시민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뉴욕의 스토니부룩대학은 소셜미디어상에서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능력을 가르치는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18세 선거권 부여가 공론화된 이 시점에 우리 고교 교실에서도 이런 수업의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참고 기사 목록

중앙일보 2017년 1월 17일자 8면 미국 등 7개국, 17세 고교 졸업 후 18세 투표
중앙선데이 2017년 1월 15일자 6면 “정치의식 성인 못잖아”vs“여론에 휩쓸리기 쉬워”
중앙일보 2017년 1월 9일자 28면 ‘낭랑 18세’의 책임과 권한
중앙일보 2017년 1월 5일자 14면 올해 대선부터 고3 투표 가능할까
중앙일보 2017년 1월 2일자 34면 아이폰 10년-SNS 가짜뉴스 판별 수업
중앙일보 2016년 12월 21일자 34면 청소년 시민의 발견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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