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김재규, 형장 가는 길에 정신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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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980년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으로 가면서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듯 말없이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장을 10여m 눈앞에 두고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힘들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 직원들에게 들려가다시피 형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교도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법무부 교정국장을 지낸 이순길(李淳吉.61)동국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최근 교도소 담장 안의 이야기를 엮은 책 '교도소 사람들'을 펴냈다.

그는 69년 교정직 공무원이 된 뒤 2001년 9월 명예퇴직할 때까지 32년간 교정 담당 공무원으로 일했다. 李씨는 이 책에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각종 비리와 대형 강력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수감생활을 가감없이 공개했다.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은 구치소에 들어오면서부터 달리기.스트레칭 등의 운동을 열심히 했고,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특히 두 전직 대통령의 수용실은 일반 재소자의 수용실과 별반 다를 게 없었고, TV나 에어컨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盧전대통령은 법정에 출두했을 때 교도관들이 보안상 방을 검열하는 이른바 '검방'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역정을 냈다고 했다. 또 張전안기부장에 대해선 내무반 생활을 하는 이등병처럼 규칙을 매우 잘 지켰다고 회상했다.

李씨는 "국민이 교정행정을 불신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책을 통해 교도소가 민주 교정을 구현하는 곳으로 탈바꿈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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