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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나침반] 재미없는 '몰카'는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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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봄 어느 날 MBC 예능PD 송창의, 코미디 작가 강제상, 그리고 개그맨 이경규 등 '일요일 일요일밤에'(이하 '일밤') 제작진은 좁은 회의실에 모여 앉아 새로 들어갈 포맷의 제목 찾기에 부심 중이었다.

60년대 말 유럽에서 시작돼 미국.일본 등에서 인기를 끈 캔디드 카메라, 혹은 히든 카메라의 벤치마킹, 이른바 한국적 변용을 앞두고 장수할 만한 이름을 찾는 자리였다. 숨은 카메라.깜짝 카메라.애교 카메라 등 지금 들으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후보들이 탁상에서 행진을 거듭하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후대에 길이 남을 이름 하나가 불쑥 터져 나왔다. 몰래 카메라.

당시 '개그계의 신사' 주병진의 위세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이경규는 드디어 안구(眼球)나 치아의 특성을 이용하지 않고도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릴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제작진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우며 아이디어 회의를 했고 마침내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기록을 들춰보니 '일밤'의 몰래카메라는 92년 11월 5일 방송된 가수 권인하편을 끝으로 공식적으로는 막을 내렸다. 물론 그 후에도 특집 형식으로 간간이 방송되긴 했지만 예전만큼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MBC 시청자부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시청률표를 보면 몰래카메라가 기승을 부리던 92년 초 '일밤'의 가구당 시청률은 매주 50%를 넘었다. 이렇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꼭지가 갑자기 문을 닫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신생 방송사였던 SBS가 '유사품'으로 전격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후발주자답게 그쪽은 더 강하고 더 격하게 만들었다. 제목도 '꾸러기 카메라'였다. 극심한 경쟁은 아이디어의 중복과 시청자 단체의 질타(연예인의 인권 침해)를 동시에 불러들였다.

방송가에서 이른바 '물귀신 작전'이라고 부르는 볼썽사나운 사태를 맞아 '일밤'은 과감하게 몰카를 버리기로 결정하고 이후 그 꼭지는 '이경규의 시네마천국'으로 대체되었다. 훗날 이것은 오락프로그램의 패러디 선풍을 유도한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몰카의 기세는 인기 연예인들뿐 아니라 소설가.아나운서.변호사.교수 등 각계각층을 섭렵했다. 이를테면 김홍신. 변웅전. 이계진. 황산성. 조경철씨 등이 그 면면이다. 제작진은 출연자의 성향과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주변 인물들의 협조를 받아 그를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신비스러워 보이던 저 사람도 결국 인간이로구나'가 제작진이 보여준 최후의 메시지다. 대상으로 점찍은 사람이 혹시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 미리 슬쩍 운을 뗀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대부분은 "전 절대 안 걸릴 거예요"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 말은 "한번 할 테면 해 보세요"로 해석됐고 그때부터 게임은 시작되었다. 황당한 상황에서 이경규가 슬며시 나타나면 그들은 포복절도하며 그 사태를 즐겼고 대중은 일주일의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었다.

이경규의 몰카와 지금 사회문제로 떠오른 몰카는 닮은 점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분명한 기획의도가 있다는 건 비슷하지만 그 노림수가 다르다. '일밤'의 몰카엔 개인의 잇속 추구나 정치적 음모 따윈 없었다. 목표는 오로지 '시청자 즐겁게 하기'였다.

유치함과 유쾌함 사이를 줄타기했던 그 몰카가 지금은 공포의 덫이 되고 있다. 기억나는가. 이경규가 몰카를 마치고 늘 부르던 노래는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였다. 심심하면 나타나 공포와 절망감을 안겨주는 몰카의 유령이야말로 이제 끝장낼 때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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