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불꽂 꺼지지 않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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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은 우리 모두의 심경은 어둡고 무겁기만 하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시위끝에 최루탄에 맞아 숨진 대우조선 한 젊은 근로자의 죽음이 정국의 흐름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벌써 한달째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노사분규는 그동안 억눌러온 근로자들의 욕구가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폭발한 어쩔수 없는 홍역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또한 그런 이유로해서 대다수 국민은 현재의 분규가 노사간의 원만한 타협으로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이없게 숨진 한 젊은 근로자의 죽음은 애통하기 그지없다.
산업현장 밖에서 근로자와 공권력의 정면충돌로 빚어진 불상사라는 점에서도 이석규씨의 죽음은 비극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씨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길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한때 대우조선 근로자들이 장례절차를 싸고 강경선회 한다고해서 노사분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노사분규에 재야, 특히 학생들이 가세하면 사태는 뜻밖의 국면으로 악화될 우려가 깊기 때문이었다.
막바지에서 근로자들이 장례를「민주 국민장」으로 하되 예정대로 5일장으로 치르기로 방향전환을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태가 어렵게 꼬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대국적이고 이성적인 대처임을 강조하지 않을수 없다. 감정을 앞세우면 당장 시원할지는 몰라도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냉철하게 생각하면 누구나 알수 있는 일이다.
이제 민주화가 천하의 대세며, 아직 불투명한대로 민주화의 길목에 들어섰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우선해서 마무리해야할 과제는 정치적 민주화부터 이룩하는 일이다. 모든 일에 선후와 완급이 있듯 당장 서두를 일이 개헌작업을 비롯한 정치적 민주화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민주화를 향한 정치일정이 차질없이 이룩되면 노사관계도 자연 풀릴실마리가 찾아질수 있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조급한 마음을 이해할수는 있지만 그 때문에 민주화란 대의가 왜곡되고 퇴색된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노사분쟁 역시 민주화란 큰 테두리속에 수용되어야 할 문제지, 노사분규가 정치의 우이를 잡으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되지않는다. 더우기 9월에 접어들면 이른바 노-학 연계를 통해 분규는 한층 악화되고 정치색을 띨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개혁은 바라지면 혁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부터 노사는 물론 국민과 정치권 모두가 해야힐일은 자명해 진다. 이씨의 죽음이 노사문제의 차원을 뛰어넘어 민주화의 불꽃을 꺼뜨릴지도 모르는 사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게 그것이다.
그의 죽음은 민주화의 길목에서 바쳐진 값진 희생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민주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만이 이씨의 죽음을 헛되게하지 않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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