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이석규씨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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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씨는 빈농 (논 6백평, 밭2백평)의 신체장애자 이정수씨 (50) 와 오분남씨(48) 의 3형제중 2남. 용북중을 졸업한뒤 가난때문에 진학을 포기, 형 이석주씨(25·현대조선소공원)의 권유로 81년 광주직업훈련원에서 1년만에 용접기능공 자격을 따 82년 대우조선소에 입사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이씨는 4년여동안 고향집에 매주 안부편지를 보낼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고 월급의 절반이상을 저축, 그동안 재형저축으로 5백50만원을 모아 지난3월에는 1백50만원을 송금해 장래의 꿈을 키워왔다는것.
지난7월초 사내체육대회축구선수로 출전했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귀향, 40여일동안 치료를 받은 이씨는 완치가 되지 않았는데도 『빨리 회사에 나가봐야 한다』며 17일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친채 귀사했다가 5일만에 변을 당했다.
『평소 석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으며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는 절대로 뒤지는 것을 싫어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투철한 후배였다』고 이씨의 고향선배이며 직장동료인 채윤석씨 (26) 는 말했다.
지난해 담석증 수술을 받고 아직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오씨는 『그렇게도 착하고 알뜰한 석규가 숨지다니』라며 한때 실신했다.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 이씨는 밤새도록 눈물을 그칠줄 몰라 위로차 왔던 친지·이웃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씨의 고향인 전북남원군사매면대신리 상신부락은 면소재지에서도 산길 12㎞를 더 들어가야하는 벽지. 이마을 주민 59가구중 51가구가 모두 전주 이씨 친지들로 이씨의 죽음은 온 동네의 슬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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