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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 속 왕권 - 신권 갈등 현실 정치와 닮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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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화 '왕의 남자'(사진)가 정치권에서 화제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21일 서울 시내 영화관 롯데시네마에서 '왕의 남자'를 깜짝 관람했다.

그가 일반극장을 찾은 건 취임 후 처음이다. 경호 문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봐 오전 9시40분 조조관람을 했다고 한다. 이병완 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같이 봤다.

그뿐 아니다. 한나라당에선 이재오 원내대표, 전여옥.정병국.박형준.박승환.김희정 의원 등이 이 영화를 감상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에선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배기선 의원, 문광위 소속의 김재윤 의원 등이 관람했다.

'왕의 남자'는 처음엔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궁중 광대극'으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개봉 뒤 '정치 풍자극''정치 스릴러'성이 강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중년 남성들이 흥행대열에 끼어들었다.

◆ '왕의 남자'의 정치적 코드=인기의 표면적 이유는 잘 짜인 영화적 구조와 배우들의 호연이다. 여장 남자인 공길 역의 '꽃미남' 배우 이준기는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왕의 남자'의 뒷심은 왕권정치가 신권정치와 갈등하는 구도에 권력 풍자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나온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영화에서 연산군은 왕권 강화에 무게를 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번번이 신하들에게 의견이 묵살되자 측근 내관에게 "처선아 내가 왕이 맞느냐. 선왕이 정한 법도에 매여 사는 내가 왕이 맞느냐 말이다"고 하소연한다. 이는 인터넷에서 영화 중 명대사로 떠올랐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은 "이 장면은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물은 2004년 초 상황과 비슷하다"며 "이 같은 상황이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연민으로 다가올 터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겐 대통령이 야당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왕의 남자' 관람은 영화 속 왕의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을 약자로 묘사하고 기득권 세력을 압박하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또 영화 속에서 궁궐로 들어온 광대들은 연산군이 왕권에 반하는 신하들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이용된다. 이를 일각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네티즌 정치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여옥 의원은 "광대란 집단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하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을 동원해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 노 대통령은 어떻게 영화를 봤을까=노 대통령은 영화 관람 뒤 참모들에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상상력이 뛰어나다"며 짧게 감상평을 말했다.

영화에서 연산군은 생모에 얽힌 아픈 과거로 인해 가슴 속에 분노의 응어리를 안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점에서 보수세력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을 표출하기도 했던 노 대통령의 캐릭터와 연결지어질 부분도 있다.

이준익 감독은 "노 대통령은 보수 기득권을 상징하는 신료와 갈등하는 왕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호.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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