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염원 안고 "천리행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5일 상오10시 무렵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 유네스코 청년원 앞길. 열흘 밤 열 하룻 낮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 대학생들을 맞으러 나왔던 5백 여명의 선·후배와 친구 및 가족들이 환호하며 손벽을 치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장마비와 땡볕도 아랑곳없이 발이 부르터 물집이 터진 발로 조국 땅을 밟으며 돌아온 전국 62개 대학 1천2백 명의 「순례자」들이 세 갈래길 모퉁이마다에서 깃발을 앞세우고 나타난 것.
「가슴에는 조국을, 눈으로는 세계를」이란 주제아래 지난5일 제14회 조국순례 대행진 길에 올랐던 남녀대학생들은 그 동안 손수 만든 하회탈을 얼굴에 쓰고 덩실덩실 춤추며, 또는 「민족통일」이라 쓴 머리띠를 두르고 늠름한 걸음으로 다가와 환영객들의 풀꽃다발과 열렬한 박수 속에 서로 얼싸 안았다. 이들이 조국순례에 나선 출발지점은 전라·경상·강원도의 7개 지역으로 그 동안 지나온 길이며 배운 내용도 판소리·시조·마당극 등 각양각색.
그러나 이 땅의 흙내음·물소리와 춤사위·노랫가락 속에서 깨달은 것은 서로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되기에 충분했던 까닭이다.
경북문경을 출발, 새재∼월악산∼단양∼제천∼양평을 지나오는 동안 마당놀이와 창극도 배웠다는 김수정양(인천교대1) 은 『알고는 엄두도 못 낼 길이라더니 정말 힘들었지만 난생 처음의 공동체생활에서 너무도 많은걸 느꼈고, 앞으로 웬만한 고생쯤은 너끈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얻었다』며 스스로 대견한 표정.
지리산을 종주하고 오는 길에 수해지역에서는 의연금을 모으고 돌로 축대를 쌓는 등 수해복구작업도 했다는 장진기군(원광대3) 은 이번이 조국순례 대행진 참가 세 번째라는 자칭 「순례광」. 그는 『자신과 싸우며 나·친구·민족을 깊이 생각하는 사이 그 모두와 새롭게 만나는 기쁨은 비길 데가 없다』며 지쳐 쓰러지는 친구대신 30㎏가 넘는 배낭을 메고 서로 부축하며 걷는 우정·희생·극기의 정신이 앞으로의 생활 속에서도 큰 힘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순례자들은 유네스코청년원 운동장에서 합류식과 광복절기념식에 이어 사물놀이 패의 장단속에 4박자춤과 깃발춤·촛불 행진 등으로 마지막 밤을 밝혔다.<김경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