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제인지 방관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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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로자들의 행동이 한꺼번에 갑자기 터져 나온 것처럼 노사분규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어느날 갑자기 1백80도 바뀌었다.
과거 YH사건에 대한 물리적 개입과 최근의 전국적인 노사분규에 대한 정부의「불개입」방침 고수는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 대응폭의 양극에 서있다.
노사분규가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꼭 치르고 넘어가야 했던 일인것처럼 정부의 태도 전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의 노사분규는 그간 공권력 개입방식의 노사정책 속에 쌓여온 부작용이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며, 그럴수록 국민경제 전체가 상당한「수업료」를 치를 것을 각오하고라도 이번에야말로 노사가 서로 부둥켜 안고 끝까지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귀중한 선례를 남겨야만 하기 때문이다.
해서 경제기획원·상공부·동자부·노동부·내무부·서울시 등 거의 모든 정부부처의 관련 공무원들은 요즘 수해 때보다 더 바삐 돌아가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도대체 정부는 무얼하고 있느냐』는 항의전화까지 받아가며 곁으로는 철저한「불개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같은 참을성이 외국사람들의 눈에는 한국 정부의「경탄할만한 자제」로 비쳤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자제」아닌「방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부문은 없는가를 한번쯤 심각히 돌이켜 보아야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코 자제에서 개인으로 기본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기업들은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엄격히 감독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손이 닿는 대로「실천의지」를 보여준다든가, 또는 최소한 어용노조의 시비가 일고 있는 분규현장들에 대해서는 적법한 노조구성을 적극 유도한다든가 하는 일 등은 정부가 불개인 방침을 고수할 부문이 아니다.
또 경제 전체가 몸살을 앓고있는데도 역시「최대한의 자제」때문인지 노동부장관만이 입을 열고 얼굴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최근의 원전 11, 12 공사계약취소와 같은 사소한 일에도 경제총수인 부총리가 자진해 진두지휘에나서는 적극성을 보여준 기억이 나서 하는 이야기다.김수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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