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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활주로에도 쓰고 "또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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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백두산 인근 해발 1400m고지에 위치한 북한 삼지연 공항. 백두산을 관광할 때 이용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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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북한의 부실 시공 책임까지 떠맡기로 해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통일부는 20일 지난해 정부의 지원금으로 북한이 진행했던 백두산 관광지구 포장 공사에서 일부 부실이 드러났으며, 이를 메우기 위해 재시공분 20억여원을 포함해 48억여원어치의 현물을 북한에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부실시공에 남북협력기금 20억여원을 써버린 셈이다.

◆ 경위=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4일 한국관광공사.현대아산 및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는 남측이 백두산 도로 포장을 지원키로 합의했다. 북한이 연내 두 차례의 백두산 시범 관광을 실시하는 등 백두산 관광을 허용하는 대신 남측 관광객들이 이용할 도로 포장 비용은 남측이 부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에서 49억8000만원을 빼내 아스팔트 포장용 자재인 피치 8000t을 북한에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남측 실무진이 현장을 방문한 결과 북한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포장 공사는 부실로 드러났다. 통일부 관계자는 "활주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중형 항공기 이상은 이착륙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도로에만 쓰기로 했던 피치를 도로와 활주로에 나눠 쓰면서 활주로 공사가 부실해졌고, 다지기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포장 비용을 다시 대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올 초 한국관광공사와 아태평화위의 접촉 이후 정부는 활주로 재포장용 3000t 과 도로 추가 포장을 위한 5000t 등 총 8000t(48억여원)의 피치를 무상으로 주기로 합의했다.

◆ 엉성한 지원 결정=지난해 7월의 지원 합의서에는 지원 규모와 시기만 언급됐을 뿐 남측이 제공한 물자에 대한 관리.감독권은 포함되지 않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합의서엔 ▶포장 구간과 지역이 명시되지 않았고▶피치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을 방지할 감독자 파견 조항도 없었으며▶공사가 늦춰질 경우 발생할 금강산 관광 지연에 대한 책임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공사 착수 이후에야 북한이 합의서엔 없었던 활주로 포장에 피치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남측이 현장 감리를 하지 못해 현재로선 피치의 전용 가능성도 확인할 수 없다. 북한이 약속했던 연내 두 차례의 백두산 시범 관광도 이행되지 않았지만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다. 북한 아태평화위는 오히려 지난해 10월 이후 '김윤규 전 부회장 축출'에 책임이 있는 현대아산에 백두산 관광 사업권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원에 합의한 지난해 7월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6.17 면담이 이뤄진 지 한 달 후다. 이 때문에 당시 합의 때 6.17 면담 이후의 남북 협력 국면을 신속히 확대하자는 기대감이 앞서 정부가 합의서를 꼼꼼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추가 지원 때는 남측의 감리 인원을 공사 전 기간(2개월 추정) 동안 현장에 상주시키도록 북한에 요구할 방침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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