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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민 불신감 해소가 열쇠, 일본, 한국 시민단체와 대화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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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14면


위안부 소녀상 문제가 한·일 외교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가 부산 소녀상에 대한 항의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17일 아베 총리가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나 일본대사의 귀임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영사 공관 앞 조형물 설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시민 모금 등으로 더 많은 소녀상이 설치될 전망이다. 일본에서 위안부 실태를 처음 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에게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과 해법을 e메일과 전화로 들어봤다.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1991년 8월 11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사회면 기사 제목이다. 일본 사회에 한국 위안부 실태를 알린 첫 보도였다.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담긴 이 기사를 쓴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58)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살인 예고를 포함해 협박편지를 수차례 받았으며, 심지어 그의 딸까지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았다. ‘날조 기자’란 얘기도 들었다. 우에무라는 지난해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란 제목의 수기를 내고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4년 신문사를 조기 퇴직한 그는 지난해 3월부터 한국 가톨릭대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동아시아 평화와 문화’가 그가 맡고 있는 강의 주제다. 1982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오사카 본사 사회부를 거쳐 서울 특파원 등을 지냈다. 국제부 차장과 중국 총국을 거친 우에무라는 동아시아 지역 전문가다. 방학을 맞아 일본 삿포로 자택에 머물고 있는 그는 “일본과 한국 정부가 합의 이전에 먼저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부터 듣지 않은 게 문제의 발단”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에 이어 부산 소녀상이 한·일 관계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내가 위안부 문제를 처음 취재한 27년 전에는 한국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소녀상은 기억을 계승하려는 운동이 한국 내에 뿌리내려진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본이다. 나는 일본인 마음속에 소녀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가 소녀상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뭔가.


“소녀상이 2015년 체결된 일·한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감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은 이런 합의 정신에 어긋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논리는 틀렸다. 소녀상은 한국 정부가 세운 게 아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합의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일본에서 현대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젊은이들이 식민지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한반도를 (일본이)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은 중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다만 그 시대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특히 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1997년 모든 출판사가 출간한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가 기술됐다.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이 문제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교과서에서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는 운동을 벌였다. 아베 총리는 그 운동체의 하나인 ‘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사무국장 출신이다. 지금 위안부를 다루고 있는 교과서는 하나뿐이다.”


-한국 정치권에선 ‘10억 엔을 돌려주자’는 움직임도 있다. 아베 총리가 사과할 가능성은 없나.


“아베 총리는 ‘(사과 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접 사과할 가능성은 지극히 작다. 현재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지난 위안부 합의 당시 한국이 요구한 사과 편지를 거부한 게 제일 아쉬웠다. 일·한 합의 발표문을 복사해 봉투에 넣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가져가는 것만으로 총리의 사과 편지가 되지 않을까. 그런 성의가 있었다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총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과의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녀상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악화된 한·일 관계에 개입하고 있다.


“미국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는 북한 핵 문제와 달리 안보가 아닌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이자 전쟁범죄다. 일본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일·한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함으로써 북핵 문제에서 (3개국이) 보조가 맞지 않는다는 우려 때문에 미국이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녀상 해법은 뭘까.


“일본 정부가 한국 시민단체와 논의해 타협점을 찾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아베 총리의 (위안부) 사죄는 외무상이 대독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이런 형식으로 사죄가 이뤄진 경위와 일본과 한국이 갑자기 합의에 이르게 된 경위를 조금 더 정중하게 설명해야 한다.”


-과연 일본 정부가 한국 시민단체와의 대화에 나설까.


“어렵다고는 생각하지만 시도는 해야 한다. 소녀상 문제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논의를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의 의견을 듣는 형식이어야 한다.”


-미·일 정상이 각각 히로시마와 진주만을 방문하면서 과거사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안부와 소녀상 문제가 해결되면 한·일 과거사 정리 작업이 진전될 수 있을까.


“소녀상 문제가 해결된다고 과거사가 곧바로 정리되는 건 아니다. 소녀상 철거 반대를 외치는 학생들이 소녀상 인근에서 농성 중인 건 불신감 때문이다. 과거사 정리의 본질은 일·한 국민의 불신감을 거두는 작업이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집무정지를 지켜본 소감은.


“87년 여름부터 1년간 연세대에서 어학 과정을 밟았다. 민주화운동 시기로 한국 사회가 크게 변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이번 촛불집회는 해방구에서 축제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힘이 참신한 차기 정권까지 이어질지가 문제다.


언론인의 눈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서울 특파원 시절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정치를 막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을 99년 단독 인터뷰했다. ‘자리를 노리지 않고 좋은 정치로 문화와 관광 대국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포부에도 고인이 된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진정한 보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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