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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메이링 “천유런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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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29면


쑹칭링(宋慶齡·송경령)의 결혼설은 상대가 천유런(陳友仁·진우인)이다 보니 풍파가 컸다. 쑨원(孫文·손문)의 친소(親蘇)정책을 못 마땅해 하던 국민당 우파는 두 사람을 싸잡아 비난했다. “쑨원 선생이 소련과 가까워진 것은 천유런 때문이다. 쑹칭링은 천유런을 무조건 지지했다. 과부와 홀아비가 외국에서 붙어 다녔으니, 안 봐도 알겠다.”


쑨원의 정책을 반대하던 당내 보수세력은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쑨원과의 결혼이 비합법적이었다며 쑹칭링을 매도했다. “국민당과 전통사회는 쑹칭링을 쑨원 선생의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선생은 조강지처와 법률에 의거한 이혼 수속을 밟지 않았다. 종이 한 장에 두 사람이 결혼을 자원한다는 서명이 다였다. 오죽 가관이었으면, 각자가 다니던 교회에서조차 혼례를 거부할 정도였다. 쑹칭링의 아버지는 존경받던 감리교 목사였다. 모친도 경건하고 성실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것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체면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부모 얼굴에 먹칠을 했다.”


생긴 것도 도마에 올랐다. “큰 키에 시원하고 보기에는 좋다. 단, 광대뼈가 너무 불룩하고, 턱도 지나치게 평평하다. 중국인들은 달처럼 동그랗거나 계란형 얼굴을 좋아한다. 쑹칭링은 일찍 상부(喪夫)할 상이다. 쑨원선생의 증세가 날로 악화된 이유를 알겠다. 천유런도 오래 살기는 틀렸다.”

천유런이 추천하는 책은 다 읽어
천유런은 자타가 인정하는 지식인이며 대(大)문필가였다. 인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쑹씨 자매는 물론이고 가족들과도 친했다. 쑹칭링은 천유런이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읽고 동생 메이링에게 권했다. 쑹메이링도 친구들에게 천유런에 관한 말을 자주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중국인이다. 그 사람 말 듣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격렬한 내용을 어쩌면 그렇게 서정적으로 표현하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격하거나 남을 비난할 때도 거친 용어를 쓰는 법이 없었다. 작은 언니를 좋아하는 듯했다. 내가 예쁘게 화장한 모습을 보더니 언니의 내재적인 우아함을 배우라고 했다. 딴 사람이 그랬으면 기분이 상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쑹메이링에게 넋을 잃은 장제스도 천유런의 박학(博學)에 고개를 숙였다. 형형한 눈빛에 지혜가 넘치던 장제스였지만, 천유런이 한마디로 알아듣지 못할 영어로 쑹씨 일가와 온갖 얘기 나눌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천유런의 가계(家系)는 한편의 소설이었다. 할아버지는 중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둥(廣東)의 가난한 농부였다. 아버지 천꾸이신(陳桂新·진계신)은 왜소했지만 손놀림이 민첩했다. 1840년,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 중, 가장 지저분하고 더러운 전쟁이었다. 대영제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다량의 아편을 중국에 풀어놓고 전쟁까지 일으켰다. 약탈과 방화가 줄을 이었다. 영국군이 한바탕 휘젓고 가면 강도와 비적들이 몰려왔다. 다음은 관병(官兵)차례였다. 촌민 보호는 말뿐, 하는 짓들은 서양 귀신이나 강도들이나 그게 그거였다.


천꾸이신도 아버지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무작정 몰려 가는 대로 가다 보니 강변이었다. 사람들에게 밀려 다리를 건너던 중 발을 헛디뎠다. 아버지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는 아들의 비명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손을 뻗쳐 끌어올리는 순간 난간이 부러지며 강으로 떨어졌다. 어린 천꾸이신은 인파에 밀리며 멀리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바라만 볼뿐 방법이 없었다. 엉엉 울며 삼촌 집으로 갔다. 삼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홍슈촨 뜻 계승하겠다며 혁명에 동참
궁핍한 집 애들은 빨리 성숙한다. 천꾸이신도 순식간에 소년 티가 났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일을 거들었다. 운 좋은 날은 배불리 먹고, 나쁜 날은 굶었다. 세상을 흘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부잣집 아들 두들겨 팼다가 마을에서 쫓겨났다.


천꾸이신은 손재주가 뛰어났다. 목공 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공구상자 메고 유랑길에 나섰다. 일거리도 많고, 소문도 빨랐다. 아줌마 고객들 머리도 손봐 줬다. 말재주도 좋아서 작은 의자에 앉아 머리손질 받던 여인들은 배꼽을 잡았다.


하루는 단골 아줌마가 어디서 귀동냥한 얘기를 해줬다. “홍슈촨(洪秀全·홍수전)이라는 사람이 꿈에 하늘에 있는 상제(上帝)를 만났다. 상제는 황금색 수염에 흑색 용포(龍袍)를 입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나누더니 배짱이 맞는다며 반가워했다. 양자로 삼겠다며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권한을 줬다.” 과거에 연달아 낙방한 홍슈촨은 반역의 길로 나섰다. 야인(野人)들이 세운 청(淸)나라를 엎어버리고 평화가 만발한 하늘의 제국을 세우겠다며 깃발을 날렸다. 태평천국(太平天國), 가난에 허덕이던 농민들은 속이 후끈거렸다. 쇠로 만든 농기구를 들고 천국으로 향했다.


천꾸이신은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제 발로 태평군(太平軍)에 합세했다. 임기응변에 능했던지, 1년 후 태평천국의 2인자 동왕(東王) 양수칭(楊秀淸·양수청)의 경호원으로 발탁됐다. 홍슈촨의 뜻을 계승하겠다며 혁명의 길로 들어선 것은 쑨원 탄생 16년 전, ‘철완(鐵腕)의 외교관’ 천유런이 태어나기 24년 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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