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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에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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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무취. 두드러진 특색이나 개성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색깔을 상품성으로 인정받는 프로세계에서는 그리 좋은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아의 오른손 투수 최상덕(32.사진)에게는 무색무취가 자신의 컬러다.

늘 조용함, 그리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담백함은 그만의 멋이다. 공을 던지는 투구동작도 그렇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벌써 프로 10년차.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고비도 많았다.

1994년 현대의 전신 태평양에 입단했던 최상덕은 96년 해태로 옮겨갔다. 당시 재정난을 겪던 해태는 유망주 박재홍의 지명권을 현대로 넘기며 그를 받았다. 타고난 유순한 성격으로 그는 개성이 강한 해태 동료들과도 잘 어울렸다.

2001년 해태가 기아로 넘어가던 해에 최상덕은 12승을 따내며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김진우가 등장했고, 힘좋은 외국인 투수 리오스가 입단했다. 팀에서는 팬들에게 어필할 스타를 원했고, 최상덕의 자리는 자꾸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최상덕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자신의 몫을 해냈다.

최상덕은 지난 5일 수원 현대전에서 7이닝 동안 4안타.2볼넷.6삼진.무실점의 빼어난 호투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4위 경쟁에서 자칫하면 LG에 더욱 뒤처질 고비였기 때문에 그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

개인적인 한도 풀었다. 상대팀 현대는 최근 7연승을 달린 선두팀일 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을 내쳤던 팀이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상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상덕은 이전까지 현대전에서만 내리 6연패를 당했다.

고비도 있었다. 1-0으로 살얼음 리드를 달리던 4회말 최상덕은 박종호.심정수에게 연속 안타를 맞는 등 1사 2, 3루의 위기를 맞았다. 최상덕은 이 부담스러운 순간에서 김동수를 1루수 플라이, 전근표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최상덕도 이때만큼은 주먹을 불끈 쥐어올렸다.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승리를 예감하는 듯 했다.

이날 승리로 최상덕은 시즌 10승(5패)고지에 올랐다. 지난해 8승(7패)으로 주춤했던 최상덕은 '두자리 승수 투수'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2년 만에 다시 지켰다. 최상덕은 이제 팀내 최다승 투수로 우뚝 서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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