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38) 설악의 눈보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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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는 설악 산행의 통과의례로 산행 전에 꼭 노루목을 찾는다.

그리고 십동지묘의 만수형과 종철형.준보형의 영전에 절을 올릴 때마다 우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저 산이 우리들을 부를 때… 얼음보다 차가운 우리 정열 태우러…'하던 만수형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말 속의 '아름다운 산'과 '얼음'이 바로 십동지묘에 절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설악산과 토왕폭이어서 우리는 그 산과 빙폭의 부름을 받고 또다시 설악으로 달려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다시 설악을 찾아간 우리의 절을 받은 것은 노루목 산기슭에 돋아난 잔디의 돌기가 아니라, 십동지묘 속에 간직된 '영원한 동정'이었다. 왜냐하면 묘에 재배하고 뒤돌아보게 되는 토왕폭은 동정의 순수함과 열정을 가진 총각에게만 제 몸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동정을 간직한 총각들은 토왕폭뿐만 아니라 범봉.천화대.석주길.공룡능선.용아장성.곰길.적벽 등 설악에 있는 여러 처녀지들과 사랑을 나누는 산행을 통해 서로 한몸으로 영원히 결합됐다.

그 사랑을 노래하는 순간을 위해, 그 아름다운 산이 우리들을 부를 때 산에 가서 다함께 어깨 겯고 노래 불러 총각이 되자는 뜻에서 만수형은 그런 노래를 만들었고 또 새로 낸 암벽코스에 '총각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만수형의 '아름다운 저 산'에 필적하는 산노래가 있다.

"산이 생명이라고 웃던 그 친구/ 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그 친구/ 눈덮인 설악산아 대답해 주려마/ 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그 친구…."

1977년 토왕폭을 초등한 박영배씨의 18번 산노래다.

물론 나는 박씨를 알기 전에 이 노래를 알고 있었으며 가끔 흥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래가 가슴 저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박씨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고나서다. 모든 노래에는 주인이 있게 마련인데, 이 노래야말로 박씨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 노래를 박씨에게서 처음 들은 날, 나는 어느 총각 산후배를 산에서 잃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박씨가 소속한 크로니산악회의 박석정씨가 서울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등반 도중 추락해 숨진 것이다.

그를 떠나보낸 아픔을 달래기 위한 술자리에서 나의 '아름다운 저 산'이라는 노래에 화답한 박씨의 노래가 바로 '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그 친구'였다.

종교를 갖지 않은 나도 그 노래를 듣는 순간에는 종교적 희열에 몸을 떨었다. 동시에 그 노래의 가사대로 눈보라 속에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박씨가 함께 가자는 겨울의 토왕폭과 아이거 북벽으로 가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나의 토왕폭 등반은 박씨의 노래가 이끈 것이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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