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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비 소홀로 「피해홍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수도권에 기록적인 장대비가 쏟아졌던 27일 새벽4시.
시간을 다투어 밀어닥치는 흙탕물을 헤치며 대피하던 서울 망원동수재민 강대룡씨(60)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놈의 유수지가 화근이여. 쓰레기가 배수구를 막아 물이 역류하다니.』 2천여 망원동 수재민들은 수용소에서 떨며 한결같이 유수지 수문설계 잘못과 관리부실이 3년만에 또다시 물난리를 불러일으켰다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수해는 천재인가 인재인가-.
당하고도 또 당하는 똑같은 재난은 천재가 아니다. 서울 망원-성산동의 유수지침수는 3년만에 똑같이 당한 어처구니없는 재난이었다. 20명이 몰사한 서울 시흥의 산사태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장마철에 겪는 물난리는 예고된 재난이며 예고된 재난은 인재다. 더우기 대처를 잘못해 당하는 수해는 인재일 수밖에 없다. 7월들어 전국을 휩쓴 세차례 수해는 더구나 6일 간격으로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태풍 셀마가 남부지방을 강타, 온통 물난리를 겪고 난 뒤 충청내륙이 당하고, 서울·경기에서 또 당했다. 충청에서는 하룻동안 6백73㎜를 쏟아 붓는 사상최대 집중호우였다지만 홍수에 대비하는 금강치수대책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서울은 시간당 51.5㎜의 비에 도시기능이 완전 마비되는 혼란을 겪었다.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되풀이 되고있는 수재를 강건너 불보듯한 안이한 자세가 엄청난 피해를 부른 것이다.
서울대 안수한교수(수리학)는 『지난 27일 새벽 서울의 물난리는 한강수위가 4.5m도 안되는 상태에서 벌어졌다』며 『서울의 하수도가 막혀 빚어진 재난이었다』고 말한다.
우선 서울의 하수도율이 96%나 된다고 하지만 서울전역의 3분의1에 가까운 지역이 소나기만 와도 물이 빠지지 않는다.
더우기 한강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하수도 손질을 소홀히 해 수해를 더했다.
평소, 특히 집중강우에 대비해 준설을 제대로 하고, 물길을 따라 점검해 보는 대비책이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서울강남지역의 신흥주택가 신사동·압구정동·학동의 물바다가 그렇고, 변두리 주택가의 침수가 모두 그랬다.
그뿐이 아니다. 비만 오면 물이 드는 도림천·안양천 주변 상습수해지는 이번에도 예외없이 수해를 당했다. 고작 지정수위에조차 채 미치지 않은 한강을 두고, 지천(지천)이 넘쳤다.
치수를 안해 봤기 때문에 당한 인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금강유역 충청내륙 집중호우는 강우량이 예상을 벗어나기도 했지만 여름홍수기에 금강하구언공사를 벌여놓고 물길을 막았으며, 곳곳의 둑이 마구 터져나가도록 방치했다가 불러들인 대형재난이었다. 대청댐도 홍수조절기능을 잃고 있었다는 것이 피해를 더한 요인이었다.
기상예보가 사전에 물을 빼놓고 기다리게 하지 못했다.
서울대 정창희교수(대기과학)는 『기상의 정확한 예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번의 3회에 걸친 수재가 절실히 가르쳐 줬다』며 『평소 이 분야와 같은 재난 예방투자에 인색해온 우리의 행정관행이 이번을 계기로 바꿔져야한다』고 말한다.
서울의 경우 구로동이나 양평동·신정동등 침수된 강남일대가 물이 빠지지 않고 있던 27일 낮에도 팔당댐은 수문 10개를 열어놓고 초당 1만t의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충주댐까지 가세하면서 상류댐이 모두 방류를 해댔기 때문이다.
서울대 안교수는 『한강의 경우 상류에 모두 7개의 댐이 있으나 홍수조절기능은 5억t정도를 감당해내는 소양댐 하나에 불과했다』며 『이는 기상예보와 한강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며 특히 충주댐처럼 평소 유람선을 운행하면서 물을 가득 담고 있다가 홍수때 방류하는 댐관리는 재고돼야한다』고 말한다.
수재는 한번으로 끝나는 재난이 아니다. 해마다 오고 몇십년, 몇천년을 반복하는 재난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에 대처, 피해를 줄이느냐는 치수대책에 있다. 물론 선진국이라는 구미 각국에서도 겪고있는 재난이지만 우리의 경우 비교적 이변이 적은 혜택을 입고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재는 방재를 위한 전면 재점검의 기회가 돼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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