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 익산 미륵사 「복원모형」 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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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백제 최대의 가람인(익산 미륵사의 복원모형이 처음으로 완성됐다. 또 신라 최대의 가람이었던 경주 황룡사의 복원모형도 실제크기의 30분의1로 국내 고건축 모형중 최대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독립기념관 제1전시관인 민족전통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들 큰 가람의 복원모형은 백제·신라의 우수한 건축·공예기술을 보여주는 한편 불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겠다는 당시 사람들의 호국의지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들 모형은 황수영씨(전동국대총장·문화재위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팀, 장경호문화재연구소장등 전문가들의 고증·자문을 받아 기원건축사무소(대표 이배영)가 설계하고 기흥성모형공사(대표 기흥성)가 제작했다.
다같이 7세기에 세워진 이 두 가람은 미륵사가 공간배치를 다양하게 하여 공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데 비해 황룡사는 전체적으로 장엄함을 강조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때 창건, 17세기께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되어 그 규모와 성격이 밝혀져 이번의 모형제작이 가능케 됐다.
사찰의 배치는 소위 삼원식으로 중앙과 동·서가 대칭되는 동·서원을 둔 우리나라 유일의 가람배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발굴현장책임자로 5년간 일해온 장경호 문화재연구소장은 『미륵사는 그 규모에서 뿐 아니라 건축설계의 수준에서도 뛰어난 건축물』이라고 강조했다.
미륵사는 중문과 목탑·금당을 한가운데 방형의 공간속에 넣고 강당·승방을 주변에 배치하여 어디에서 보든지 중앙부가 강조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중앙부를 감싼 회람이 복낭으로 만들어져 안쪽의 것을 금당에서 사용하고 바깥쪽의 것을 강당·승방에서 사용한 것도 국내사찰에서는 유일하게 나타나는 형태다.
이에 비해 황룡사는 네모꼴의 큰 회랑안에 목탑·금당·강당·승박등을 모아두어 전체적으로 단조롭다. 그러나 차양칸이 있는 중층의 금당등 건물등이 장중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30분의1로 축소해도 높이가 2.6m나 되는 거대한 9층목탑은 통일의지를 가졌던 신라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황룡사는 일탑삼금당식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1976년부터 83년까지 발굴하여 전체 규모를 파악했다.
두 절의 건물은 미륵사쪽이 처마의 끝이 올라가는 유연한 곡선을 보임에 반해 황룡사는 장엄한 모습을 살리는 직선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장식용 기와의 모습에서는 신라쪽이 더 장식적인데 비해 백제쪽은 소박한 평면적 무늬를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기초를 다진 공법을 보면 조금 뒤에 만들어진 황룡사쪽이 더 튼튼하게 시공되었다. 미륵사가 점토질의 흙을 3∼5㎝씩 넣어 다져나간데 비해 활용사는 냇돌을 깔고 그위에 점토질의 흙을 넣고 그 위에 다시 냇돌을 까는 기법을 보였다. 두 가람이 다 비슷한 시기의 호국사찰로 국력을 총동원해 만들어졌으며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았음이 그 규모와 상징물인 목탑모양에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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