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민간기업 외교에 손놓은 한국 총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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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ㆍ일본 기업들과 달리 일부 한국 대표 기업의 총수는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려 경제 외교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변변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당장 그룹의 핵심조직인 미래전략실 수뇌부가 특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고 있어, 트럼프 취임식을 전후로 펼쳐지고 있는 민간 외교전에 낄 여유가 없다. 9일에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특검에 출석, 19시간이 넘는 밤샘조사를 받고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두 사람의 조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최 실장, 장 사장 등 삼성그룹 인사 8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상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세계 주요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대미 민간외교를 펼치는 중요한 시점이지만, 현재 삼성은 안타깝게도 미국에 신경 쓰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3명,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등도 출금금지 됐다.

현대차그룹은 최순실게이트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지만, 다른 이유로 트럼프 당선자 측과 공식적인 교류를 피하고 있다. 포드와 도요타 등이 트럼프의 ‘투자 으름장’에 항복선언을 한 것이 내심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포드는 최근 멕시코 공장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미시간주 공장에 7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며, 도요타도 멕시코 공장 대신 미국에 10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재계의 대표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최근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미국상공회의소와 함께 연 제28차 한미재계회의 총회가 마지막이었다. 전경련은 대미 민간외교는커녕, 12일 예정된 회장단 회의조차도 주요 총수들의 불참으로 정상적인 진행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월 정기총회를 앞둔 이날 회의에서는 허창수 현 회장의 후임 회장과 조직 쇄신안 등 전경련의 운명에 대한 주요 논의를 해야할 처지다. 전경련은 2008년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만 하더라도 미국 정ㆍ재계 주요인사들을 초청해 각종 행사를 벌이는 등 미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간외교를 강화하기 위한 발 빠른 행보를 보여왔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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