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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수다] 고교논술방-진정한 동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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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 참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다.수험생들이 서점에서 논술 참고서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 학생 글 - 이정순 <독산고 1>

낡은 관습에 무조건 동의는 곤란

[1] 우리는 많은 일에 동의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에 동의하는지 우리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채 동의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비합리적인 관습과 논리에 젖어 있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는 아닌가?

[2] 제시문에 드러난 동의는 크게 '관습에의 동의'와 '합리적 이성에의 동의'로 유형화할 수 있다. 위대한 관습에 따라 소년을 골짜기에 던져 버린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관습에의 동의이고, 소년을 데리고 돌아간다면, 이는 합리적 이성에의 동의가 될 것이다.

[3]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관습에 동의한다는 것은 단순한 동의 그 이상을 의미할 수 있다. 제시문의 위대한 관습은 '병든 사람을 골짜기에 던져 버리는 행위'로서 이는 분명 건강하고, 능력 있는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행위이다. 강자의 논리로 형성되어, 비합리적이거나 심지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우를 관습은 범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뿐만 아니라 관습은 오래전에 형성되어 이어져 오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나 새로운 가치와 충돌해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여성들도 직장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의 부담이 줄어들지 않아 '슈퍼우먼증후군'이 새롭게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그러한 예이다.

[5] 그렇다고는 해도, 관습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수가 지켜왔던 가치관에 반(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년과 대학생들은 '비웃음, 치욕'이라는 이름의 응징을 받게 된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아니오"라고 대답한 것, 대학생들이 위대한 관습에 동의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합리적 이성에 동의한 것이다. 합리적 이성은 관습의 권력을 배제하고 상황 그 자체를 사유하게 한다. 따라서 합리적 이성에 따르면 불합리한 관습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4.19혁명이나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그런 합리적 이성에 따른 것이었다.

[7]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합리적 이성에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3.15부정 선거나 군사 독재를 그저 당연한 정치적 관습으로 여겼다면 민주화운동은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만큼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의문의 제기는 합리적 이성의 바탕이다.

[8]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받고 있는 교육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몇 십 년 째 주입식 교육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병든 사람을 골짜기에서 떨어뜨려야 한다. 개인은 현실의 낡은 가치에 그저 동의하고 있는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9] 물론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랜 시간 동안 지켜진 낡은 관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그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생기는 문제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모순을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 한 두 사람씩 늘어간다면, 우리는 오늘보다는 더 나은 모습의 내일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 총평 및 첨삭

핵심 잘 짚어…간결한 글 쓰기 노력을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이정순 학생의 글은 문제의 요구사항을 잘 반영한 좋은 글이다. 동의의 유형을 '관습에의 동의'와 '합리적 이성에의 동의'로 구분하면서, 전자를 "강자의 논리로 형성되어, 비합리적이거나 심지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우"를 범하는 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후자를 잘못된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의식으로 규정함으로써, 각 동의의 특성을 잘 정리하고 있다.

물론 이 대목을 "관습에 대한 무조건적 동의"와 "합리적 이성에 따른 동의" 정도로 표현했다면 의미가 더 분명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동의의 특성을 구분한 후 적절한 예를 통해 그 의미를 구체화했다는 점은 또 다른 장점이다. [4]의 '슈퍼우먼증후군' 같은 사례가 돋보이나, [8]의 '주입식 교육방식'에 관한 문제 제기는 약간 과도하다.

문장은 상당히 정돈된 편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장문을 쓰다 보니 쉼표의 사용이 많아져 한눈에 읽기에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채점자가 학생의 글을 배려해서 읽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채점자는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 쪽에서 간단명료한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문단을 너무 많이 나눈 것도 단점이 될 수 있겠는데, 적절한 생각의 단위는, 1600자 논술의 경우 대여섯 개 정도라 하겠다. 유사한 논의를 묶어 글을 전개했다면 이해도 쉽고 논리도 더 치밀해진 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 제시문 해설

<제시문 해설> 출전: 브레히트, '동의하지 않는 자'

일반적으로 어떤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이대로도 괜찮은데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문제 제기는 학문과 사회 발전의 동력이며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무심코 내린 동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무지나 무관심 탓에 많은 것들에 대해 무심코 동의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동의하며 살아가는 것들 중에는 비판을 받아 개정되어야 할 것들도 많다. 반복되는 구태와 악습이 대표적 예이다. 나아가 학문의 발전도 기존 틀에 동의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일단 동의한 것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동의를 번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처음부터 신중을 기해 동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잦은 말 바꾸기와 무책임한 약속이 사회에 만연할 수 있다.

많은 제도와 법규가 동의를 통해 마련된다.

그만큼 동의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다. 합리적이고 상황에 맞는 동의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러한 동의에 이르는 길을 아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한 일인 셈이다.

*** 다음 주제는

고교생 대상 실전 논술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중앙일보 joins.com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고교 논술방에 글을 올려주세요. 매회 20명을 골라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김재인 대표강사가 첨삭지도를 해드립니다. 또 우수 논술 한 편을 골라 총평과 함께 지면에 게재합니다. 논제와 관련된 제시문은 지면 사정상 '우리들의 수다' 고교 논술방에만 올립니다.

▶논제:다음 제시문(cafe.joins.com/suda 참조)을 참고해 역사 서술에 대해 평가하시오(1600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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