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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시인)|황동규의 『다산초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달의 시들 가운데 황동규의 「다산초당」(우리시대의 문학·6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가 줄기차게 쓰는 여행시의 하나지만 여행이란 <삶이 한쪽 눈에 들어 있는>우리들 행태의 하나라는 자각적 인식이 퍽 인상적이다. 이 시는 <해가 떴는데 눈발이 날리는 희한한 날>서울을 출발하여 약천 물을 마신 후 주변을 돌아보며 <하늘에 다시 날리는 눈발>을 보고 <눈송이 몇은 천천히 내장에서 녹이리라>는 독백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이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은 황동규의 초기시에서부터 여태까지 수많은 작품속에 그 얼굴을 계속 내미는 존재인데,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시적 자아의 다른 이름이다. 이 작품 또한 그 눈의 역할이 크게 드러난다.
어떻든 그의 여행 목적은 다산을 향해 있지 않다. 여행의 모든 목적지가 그렇듯 그에게도 다산초당은 경유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여행이란 <삶이 한쪽 눈에 들어있는>우리들 의도적 행위의 한 전형이다. 여행이란 막다른 골목앞에 선 자의 그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자의 여유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비우고 싶은 삶과 채우고 싶은 삶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삶이란 기껏해야 한쪽 눈뜨기가 아니겠느냐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여행 또한 삶이 한쪽 눈에 들어 있고, 다른 한쪽은 자의적으로 방치된다. 그가 1차적으로 방치해 놓은 한쪽 눈 속에는 이 시의 서두부분에 서술되어 있는 상투화되고 기계화된 삶이 깔려 있다. 이런 형의 삶을 닦아주는 반성적 자아가 다른쪽 눈을 뜨게 해 준다. 그 닦아주는 존재가 <앞창을 한번 완전히 지웠다가 다시 열어주는> 눈발이다. 이 눈발의 유혹, 낯선 삶의 현장에 닿고자하는 탐욕이 여행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여행이란 양쪽 눈을 번갈아 가며 닫고 여는 운동이다. 이 운동, 이 눈뜨기는 기계적 삶을 <띵하게 사는것>임을 일깨우기도 하고, 귀양살이조차 <날오이처럼 싱싱한>곳의 삶이라는 식으로 미화시키기까지 하도록 그를 밀어붙이다. 그러므로 그의 여행은 삶이 비어 있는 한쪽 눈에 그 눈이 채우기를 바라는 세계찾기의 의도적 행위다.
얼핏 보면 그는 그러한 여행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운 좋으면 길 양편으로 설화가 따라온다 운이 나쁘더라도 옆자리에서 알맞게 화장한 젊은 여자가(…)>등등의 것까지 그의 심리적 단층에 각인되는 귀절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다시 보면 그것은 따뜻한 삶에 대한 그의 노골적인 갈증의 다른 징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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