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죽을죄’를 지었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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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말은 최순실씨가 지난해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이후 최씨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그가 말한 ‘죽을죄’가 무엇인지 궁금케 했다. ‘죽을죄’를 글로 적을 때 붙여 써야 할까, 띄어 써야 할까.

알고 있듯이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는 게 맞춤법의 원칙이다. ‘죽다’와 ‘죄’는 각각의 단어이고 ‘죽을’이 ‘죄’를 수식하는 구조이므로 ‘죽을 죄’처럼 띄어 쓰는 게 맞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론 맞는 말이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둘 이상의 낱말이 만나 하나의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살피다+보다=살펴보다’ ‘돌+다리=돌다리’와 같은 합성어다. 이런 합성어는 새로운 하나의 단어로 보아 “나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성격이다”와 같이 붙여쓰기를 한다.

‘죽을죄’도 ‘죽다’와 ‘죄’가 만나 ‘죽어 마땅한 큰 죄’를 가리키는 새로운 단어가 됐다. 그러므로 “죽을죄를 지었으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와 같이 붙여 써야 바르다.

이 외에도 ‘죽다’와 관련한 합성어는 많다. ‘죽을힘(죽기를 각오하고 쓰는 힘)’ ‘죽을상(거의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는 표정)’ ‘죽을병(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 ‘죽을고(막다른 고비나 골목. 더는 어찌할 수 없게 된 어려운 처지나 지경)’ ‘죽을내기(있는 힘을 다한 행동)’ 등이 하나의 단어다.

따라서 이 단어들도 모두 “죽을힘을 다해 밀어냈다” “왜 아침부터 죽을상을 하고 있니” “죽을병도 아닌데 무슨 엄살이 그리 심하냐” 등과 같이 붙여 써야 한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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