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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지름 0.5㎜ 혈관 한땀 한땀 이어붙이는 손 재생 드림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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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현 원장이 선천적으로 손가락들이 서로 붙어서 태어난(합지증) 네 살짜리 아이의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우정

우상현 원장이 선천적으로 손가락들이 서로 붙어서 태어난(합지증) 네 살짜리 아이의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우정

연 8000여 건 수술 성공률 98%
국내외 수부외과 전문의 산실
국내 첫 팔 이식 수술 성공이 목표

W병원 수부미세재건팀

서울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내려 다시 차로 30분.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한 대구의 메디컬 거리인 달구벌대로 중심엔 수부(손)미세재건의 메카로 불리는 W병원이 있다. 사고나 선천성 기형으로 기능을 잃은 환자의 손을 되살리는 미세재건 분야에서 역사를 써내려 가는 곳이다. 연간 8000여 건의 수술을 소화하며 ‘수술 성공률 98%’란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우상현 원장이 이끄는 수부미세재건팀은 하루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병원을 지키며 0.1㎜의 실로 잘려나간 손가락뿐 아니라 환자의 다친 마음 조각까지 이어붙인다.

수부외과 전문의 8명 협진
이 병원에는 손·팔을 전문으로 다루는 수부외과 전문의가 8명 있다. 이들이 수부미세재건팀의 핵심이다.

손은 단순해 보이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섬세한 기능을 구사하는 부위다. 전선의 단면을 자르면 얇은 코일 다발이 빼곡하듯 손에는 뼈·혈관·신경·인대가 밀집해 있다. 손가락 혈관과 신경의 지름은 1㎜가 채 안 되고, 손가락 끝 혈관의 지름은 0.5㎜에 불과하다. 볼펜으로 작은 점을 그린 것보다 작다. 끊어진 뼈와 뼈 사이엔 가는 철심을 박아 이어주고 머리카락 굵기보다 가는 실로 한땀 한땀 혈관을 이어붙여 손가락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 수부외과 전문의다.

수술 시 신경 한 가닥을 놓치면 손끝 감각이 돌아오지 않고, 미세한 실수가 조직 괴사로 이어진다. 정형외과·성형외과·일반외과 전문의가 또다시 2년간 손의 해부학적 구조와 고난도 수술법을 집중적으로 배워야만 비로소 수부외과 전문의 자격이 주어진다. 복잡한 손의 구조와 기능은 그만큼 세밀하게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우 원장은 “선천성 손 기형과 수지 접합뿐 아니라 손 관절염, 주먹이 잘 안 쥐어지는 인대염, 손이 저린 신경압박도 수부외과 전문의가 치료하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8명으로 구성된 수부미세재건팀은 까다로운 고난도 재건 수술도 무리 없이 성공시킨다. 신체 다른 부위의 신경을 손·팔에 이식하는 신경이식술, 엄지발가락을 떼 엄지손가락 부위에 이식하는 족지전이술은 미세재건 수술의 꽃으로 불린다.

매일 아침 7시20분에 열리는 수부미세재건팀 회의는 수술 성공률을 높이는 원동력이다. 의사별로 전날 수술한 환자 사례와 당일 수술할 환자의 계획을 공유한다. 특이하거나 애매한 사례는 집중적으로 논의해 최선의 방안을 찾는다. 환자 1명에 8명 이상의 전문가가 동원돼 수술 계획을 세우고, 수술 후 관리를 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W병원은 자연스럽게 수부외과 전문의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됐다. 해마다 3명의 수부외과 전문의를 배출한다. 대학병원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의사 교육이 여기서 이뤄진다. 우 원장은 미국 미세수술학 교과서와 수부외과 교과서 등을 집필한 저자다. 그는 관련 논문을 SCI(과학기술논문인용지수)급 학술지에만 20편, 국내 학술지까지 포함하면 110여 편을 발표했다. 우 원장은 손 재건 분야에서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 대한수부외과학회 이사장과 대한미세수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독일·홍콩·러시아 의료진도 우 원장이 이끄는 W병원을 찾아 수술 기술을 연수받고 돌아간다.

미국 미세수술학 교과서 써
W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수지접합 전문 병원이다. 손가락을 재건하는 분야에서 실력 있고 안전한 병원이란 의미다. 2011년에 복지부로부터 전문 병원으로 지정받았고 2015년에 진행된 2주기 지정에도 성공했다. 수지접합은 복지부가 전문병원으로 지정할 만큼 특수한 분야다. 우 원장은 “손가락 접합 수술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첫 수술일 정도로 까다롭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수술하는 손 재건은 숙련된 의사의 집중력과 정교함을 요구한다. 또 손·팔 절단 사고는 주로 밤 늦은 시간에 작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병원은 하루 24시간 응급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우 원장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당황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수부외과 전문의가 있는 전문 병원을 찾아 수술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축적된 임상 연구로 미세재건 분야에서 기반을 쌓은 W병원의 다음 목표는 팔 이식 수술이다. 팔 이식은 기증받은 뇌사자의 팔을 사고로 팔을 잃거나 선천적으로 팔이 없는 사람에게 이식하는 첨단 의학 분야다. 해외에선 팔 이식 수술이 1999년에 처음으로 성공한 이후 80여 건의 수술 사례가 보고된다.

국내에서도 팔 이식에 성공할 수 있는 기술력이 충분하고, 복지부에서 2010년에 팔 이식을 신의료기술로 인정해 관련 제도가 갖춰졌다. 그런데 아직까지 국내에선 팔 이식 수술이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팔을 기증할 공여자를 찾기 어려워서다. 우 원장은 “팔이 눈에 보이는 신체 부위라서 기증에 대한 가족의 거부감이 크다”고 말했다. W병원에선 공여자에게 맞춤 의수를 제작해 제공할 계획이다. 우 원장은 “팔 이식이 절실한 대기 환자가 우리 병원에만 200명이 넘는다”며 “병, 선천성 기형, 사고로 팔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의 손을 내밀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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