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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대중화 10년…쓴맛 봤지만 그래도 유효한 재테크 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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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재테크의 왕좌’를 뺏을 줄 알았다. 적립식 펀드는 적금의 아성을, 거치식 펀드는 예금의 궁궐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2007년 7월 말, 공모 펀드 계좌수가 1751만개를 기록했다. 전체 가구수(2005년 말 통계청 추산 1598만)를 웃돌았다. ‘1가구 1펀드’ 시대의 개막이었다.

본지가 ‘2016년 펀드 평가’를 계기로 펀드 시장 10년을 결산했다. 2005년 적립식 펀드 열풍을 시작으로 꽃 피운 펀드 시장은 2007년 절정을 맞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꺾였다. 2007년 200조원을 돌파한 공모 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말엔 220조원이 됐다. 2007년 한 해 동안 60조원 늘었는데 2008~2016년 9년간 17조원 느는 데 그쳤다. ‘펀드의 꽃’이랄 수 있는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2007년 한 해 동안 40조원에서 107조원으로 급증했지만, 지난해 말엔 62조원으로 되레 줄었다.

10년 새 펀드는 ‘국민 재테크’ 수단에서 다시 자산가들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 시장은 2006년 말 81조원에서 지난해 말엔 252조원으로 급증했다. 최소 1억원은 있어야 가입 가능한 한국형 헤지펀드가 선보였다. 기관이나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해외 부동산 펀드가 인기를 끌었다.

일부에서는 ‘공모펀드 무용론’까지 나온다. 펀드 수익률이 두 자릿수라는데도 주변에 펀드로 돈 벌었다는 사람이 없어서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운용사) 경영진의 철학 부재, 펀드매니저의 소신 부족, 판매사의 이기심, 투자자의 무지 등 4박자가 결합돼 대부분이 펀드 투자로 쓴맛을 봤다”고 말했다.

대중은 언제나 시장을 뒤쫓았다. 시장은 그러나, 1년마다 변덕을 부렸다. 어제의 꼴찌가 오늘의 1등이 되고, 어제의 1등이 오늘의 꼴찌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

중국 펀드가 대표적이다. 2007년 수익률이 50%를 웃돌면서 열풍이 불었다. 그런데 중국펀드에 100만원 투자해서 50만원 벌었다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은 시장이 정점을 찍은 2007년 가을 투자를 시작했다. 1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익률이 고꾸라졌다. 2008년 수익률이 -55%가 됐다. 계좌별로 보면 원금의 반토막은 기본이고 3분의 1 토막 나는 일도 빈번해 ‘고등어 펀드’ ‘갈치 펀드’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돌았다.

중국펀드는 2009년엔 완전히 다른 실적을 냈다. 56% 수익을 거뒀다. 투자자는 떠났는데 시장이 부활했다. 부활한 시장에 2010년 투자자들이 돌아왔다. 그해 성과는 3.9%. 원금을 까먹지는 않았지만 당시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다면 20%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모든 자산은 시장에서 가장 각광을 받을 때가 꼭지인 경우가 많았다”며 “투자자들은 언제나 그 펀드가 가장 인기 있을 때가 돼서야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우직하게 투자했는데도 믿음과 인내를 배신하는 펀드도 많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순자산액이 10억원 이상으로 10년간 운용된 641개 공모펀드 가운데 41개 펀드는 원금을 까먹었다. 리스크를 지지 않는 예금(연 3%로 10년간 복리 투자할 경우 34.4%)보다 못한 성과를 낸 펀드가 159개에 달했다. 4개 중 하나 꼴이다.

반면, 39개 펀드는 100%를 웃도는 수익을 거뒀다. 유형별로는 29개가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다. 운용사별로는 신영자산운용 펀드가 8개로 가장 많았다. 이상진 대표는 “우리는 펀드로 주식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지분 투자를 한다”며 “경영진과 매니저가 10년간 똑같았던 게 좋은 성과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펀드는 대중화 10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실질금리 1% 시대, 예금으로 돈을 불리기엔 역부족이다. “펀드는 저금리 시대 여전히 유효한 재테크 수단”(김정아 금융투자협회 경영지원본부장)이다.

증권가에서는 올 한해 펀드 시장은 대체로 채권보다는 주식, 국내보다는 해외, 신흥국보다는 선진국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동호 한국투자신탁운용 리서치센터장은 “가장 선호하는 시장은 미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을 쫓는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 김정아 본부장은 “시황이 아니라 자신의 투자 계획과 목표에 맞춰 펀드 가입과 환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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