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한 명에 의료진 17명 나서는 … 딱 하나뿐인 치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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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환자는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장애인 치과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110kg의 체중에 발버둥이 심했던 이 장애인 소년을 치료할 때는 17명이 붙잡아야 했다. [서울시립장애인치과 제공]

"치료 끝나면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어서 입 벌리자."

서울 성동구 홍익동의 서울시립장애인치과병원 진료실.

지체장애 1급인 김성희(38.여)씨는 못내 겁이 난 모양이다. 고분고분 진료대에 눕기는 했지만 발버둥 치지 않도록 몸을 고정하는 벨트를 채우자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언니 김모(41)씨가 살살 달래지만 연방 도리질이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이곳 공립 장애인 치과가 문을 연 것은 지난해 8월 16일. 어느덧 개원 5개월이 지났다. 문을 열자마자 하루 80~100여 통의 진료 예약이 쏟아졌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786명의 환자가 다녀갔다. 그간의 진료 횟수는 2043회. 네 명의 의사가 각각 하루 4~8명을 치료한다.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세 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성희씨는 지난해 9월 이곳에서 치료받기 시작했다. 경기도 일산 집에서 여기까지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이나 걸린다. 하지만 동네치과에 다니기가 여의치 않은 그의 입장에서는 멀리나마 장애인 전문 치과가 생겨 다행이다. 언니 김씨는 "동네치과에서는 의사.간호사가 달래고 엄포 놓아도 안 되니 전신마취를 하고 치료받기도 했다"며 "그러다 보니 충치를 방치하기가 일쑤였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서울시 예산으로 서울시치과의사회가 운영한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이곳에는 휠체어 환자가 편안히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통로에 점자 안내판을 설치했다. 복도에는 장애인학교 어린이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진료대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벨트를 설치할 수 있고 휠체어에 앉은 채 치료받는 공간도 있다. 환자 한 사람을 치과의사 한 명과 치위생사 두 명이 담당한다. 필요한 경우 더 많은 사람이 배치된다.

진료를 하면서 병원 운영도 맡고 있는 이충복(60) 부원장은 "장애인 치과 진료는 긴장의 연속"이라며 "110kg 거구의 환자가 발버둥치는 통에 개구기(입을 계속 열어 주는 도구)를 물려 17명이 붙잡고 진땀 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기실에는 온돌방도 있다. 원래 놀이방으로 운영했지만 병원을 운영해 보니 똑바로 앉아 있기 힘든 장애인.노인 등에겐 누워 쉴 수 있는 온돌방이 필요해 용도를 바꿨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응급환자를 제외하곤 예약은 필수며 6월 말까지 예약자가 759명에 이른다. 4~5개월 대기는 보통이어서 지금 전화하면 5월 초 진료받을 수 있다. 전남 여수에서 오는 환자도 있다.

접수과 직원은 "시 예산으로 운영돼 서울시민은 20~50% 할인 되지만 타 지역 환자는 그렇지 않은데도 멀리서들 온다"고 했다. 장애인 환자는 치료 시간이 길어 일반 치과에 다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원장은 "장애인 치과가 도별로 하나 이상은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시에도 몇 곳 더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도쿄(東京)도에만 15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현(縣)별로 장애인 치과병원이 있다.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장애인은 28만9517명, 전국으로는 174만1024명이다. 전화 02-2282-0001.

권근영 기자

"지혈시키려 턱 잡고 두 시간 있었죠"

자기 병원 정리하고 봉사 나선 이충복 부원장

"장애인 치과는 가장 필요한 병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필요없는 병원이 되는 게 바람직하겠죠."

이충복 서울시립장애인치과병원 부원장이 화두를 던졌다.

장애인 환자가 치과 병.의원에서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된다면 환자들이 굳이 먼 곳에서 이곳을 찾아오지 않아도 될 거란 얘기다.

심신이 불편한 장애인은 양치질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치아 건강이 나쁘기 일쑤인데도 정기검진이나 치료를 위해 치과에 가기도 쉽지 않다. 계단.문턱 넘기조차 불편하다.

이 부원장은 "진료가 오래 걸리거나 대기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장애인 환자도 있어 다른 환자들이 불편해 하기 때문에 서로 힘든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도 고생스럽다. "환자가 진료 내내 소리를 질러 종일 귀가 먹먹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건 약과다. 환자에게 걷어채고, 뱉는 침을 맞기도 했다. 이를 뽑았지만 환자가 피가 멈출 때까지 솜을 물고 있을 생각을 안 해 두 시간 동안 직접 턱을 붙잡고 있던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예순 넘기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다"는 이유로 30년간 운영하던 치과를 정리하고 이곳에 왔다.

가장 보람 있을 때를 묻자 "진료실 들어오기조차 거부하던 환자가 결국 틀니를 하고 환하게 웃으며 나갔을 때"라고 답했다. 그 환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 부원장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내 왔다.

그는 "치료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예방을 강조한다. 환자마다 스스로 양치질하는 교육을 받는다. 올해는 환자.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봉사 정신을 강조하는 그지만 봉사하겠다고 찾아오는 의사에게는 6개월 이상 꾸준히 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한다. 그는 "익숙한 의사.간호사에게만 입을 벌리는 환자가 많아 의사가 중간에 그만두면 곤란하다"고 했다.

워낙 치과 진료의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개원 때부터 꾸준히 병원에 드나들며 치료받는 환자가 많다. 10대가 틀니를 해 넣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지속적인 봉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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