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적 관점서 미술사 해석, 격렬한 논쟁 불러온 비평계 큰 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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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6 면

지난 2일(현지 시간)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 사회비평가로 왕성하게 활동해 미술과 문학에 큰 자취를 남긴 존 버거(John Berger)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대표작인 미술비평서『다른 방식으로 보기』와 부커상을 받은 소설 『G』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26년 런던에서 태어난 존 버거는 40년대부터 화가로 경력을 시작, 틈틈이 미술 비평과 리뷰, 에세이를 잡지에 기고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로서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발표했다. 58년에는 첫 소설 『우리 시대의 화가』를 출간했다. 사회주의자인 작가의 정치적 신념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스스로 화가로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순수한 화가의 모습이 아닌 사회적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화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가진 소설가의 등장을 알렸다.


72년은 그의 경력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영국 BBC에서 ‘보는 방식들(Ways of Seeing)’이라는 제목으로 유럽 회화에 대한 시리즈 방송을 진행했다. 이 방송을 바탕으로 같은 제목의 책도 출간됐다(한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이 책은 서양 회화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의 시각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미술사와 미술비평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아카데믹한 미술 연구는 미술 작품을 그 형식적 특징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보는 방식’으로는 각 미술 작품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다. 존 버거는 그것을 주문한 사람, 즉 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냐 예술가 스스로냐, 남성이냐 여성이냐, 어떤 인종이냐를 아는 것이 미술작품 해석의 핵심임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서양 회화, 특히 유화의 500년 역사는 그것을 주문한 남성 권력자의 소유욕을 과시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다. 예를 들면 말이나 소와 같은 가축 그림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건 그 가축을 소유한 귀족의 재산을 자랑하는 것이다. 여성 누드 역시 남성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누드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상화되고 있음을, 특히 그 그림을 보는 남성 주문자의 대상이 되었음을 밝힌다. 반면에 유럽 회화 속 남성은 권능을 가진 자로 주체적으로 묘사된다.


이 책은 방송이 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미술대학에서는 이 책을 금기시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이 책의 제목처럼 다양한 ‘보는 방식들’로 더욱 풍성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미술사 연구에 정치·사회적 관점이라는 보는 방식을 도입해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책은 서양 회화와 현대 광고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고찰함으로써 광고 커뮤니케이션 연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많은 미술사 및 대중문화 연구자들이 존 버거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존 버거는 같은 해 출간한 소설 『G』로 부커상(지금은 ‘맨부커’로 바뀜)과 제임스 타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로서 최고의 해를 보낸 셈이다. 그는 상금의 절반을 흑인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단체인 블랙팬서(Black Panther)에 기부함으로써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보여주었다.


영국 사회에 대한 혐오 때문에 62년부터 프랑스로 이주해 글을 쓰면서 동시에 농사일을 하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10편이 넘는 소설, 4편의 희곡, 4편의 시집, 그밖에 수많은 비평서와 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특히 평생의 파트너인 사진가 장 모르와 함께 글과 사진이 병행된 독특한 저술로도 유명하다. ●


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kshin2011@gmail.com , 사진 열화당·ⓒJean Mo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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