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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제·로스쿨 비용 들더라도 사법개혁 차원서 이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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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징벌적 손해배상제, 주민소송제, 노동법원 신설 등이 중요하다. 모두 입법사항이라 격론이 예상됩니다."

한승헌(72)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위원장을 15일 오후 서울 수송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18일은 사개추위가 출범한 지 1년째가 된다.

그는 "지난해 정부수립 뒤 반세기 넘게 손질 안 된 사법제도를 리모델링했고 올해 기념비적인 마무리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사개추위가 인정하지 않기로 하자 검찰 조직이 극심하게 반발했던 사태를 가장 어려웠던 일로 꼽았다. "위원회로서는 2004년 12월에 나온 대법원 판례를 법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검찰이 유죄 입증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했지요. 그때 김승규 법무부 장관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 검찰 입장을 고려하는 쪽으로 정리했습니다."

-누가 먼저 만나자고 했나.

"그때는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는 상황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심전심으로 전화가 울렸다고 봐야 한다."(웃음)

배심재판과 로스쿨 등 새로 도입되는 제도가 선진국 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거나 국민의 비용부담만 늘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한 위원장은 "일부의 걱정은 이해가 가지만 고비용을 뛰어넘는 사법 개혁의 성과와 가치 등을 생각하면 비용 문제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소신을 밝혔다.

-배심재판에 대한 우려가 법조계에서 적지 않다.

"어떤 법조인이 쓴 글에 '만델라가 40년 수감생활한 것이 배심제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인혁당 사건의 8명이 교수형을 당한 것은 대법원 때문'이라며 대법원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극단적인 부작용만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우리 국민의 민주적인 역량에 비춰 새로운 배심제도가 잘 정착이 되리라 믿는다."

-로스쿨 인가 대학 및 로스쿨 정원 문제는.

"로스쿨 인가를 못 받는 대학은 망한다고 말하는 것은 과열 경쟁 때문이다. 또 대학원의 정원을 법에 정한 일이 없다. 일본은 형식적인 요건을 갖춘 모든 대학에 로스쿨을 인가하는 바람에 로스쿨 졸업자의 25~30%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 일본의 사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한 위원장은 사개추위 위원 구성이 '코드인사'라는 말과 '졸속 추진'이라는 말에 곤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1993년 김영삼 정부 때의 사법발전위원회부터 시작해 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 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2003년에 사개위, 이렇게 해서 10여 년 논의한 것을 사개추위가 마지막 완결판을 만드는 건데 이것을 졸속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사개추위 활동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이 만족스러워 하는지 물었다. "우리 일에 한 번도 뭐라 한 적이 없어 편하다"고 대답했다. 스스로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원래 학생은 답안만 쓰고 점수는 선생님이 주는 것"이라면서 "채점은 국민과 언론이 하겠지만 그래도 우등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며 크게 웃었다.

한 위원장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 "대체복무제도가 고려할 만한 대안이라 생각한다"며 "일단 추진해 보고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람이 많으면 재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수.김종문 기자

◆ 한승헌 위원장은=▶1934년 전북 진안 출생▶전주고.전북대 정치학과▶고등고시 8회(57년 합격)▶서울지검 검사▶한국기독교회협의회 인권위원▶반공법 필화사건으로 구속(75년)▶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80년)▶사면복권, 변호사 재개업(83년)▶언론중재위원회 위원(94년)▶감사원장(98년)▶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99년~)▶사개추위 공동위원장(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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