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개방·표현의 자유선행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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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표현과 소재선택의 자유는 예술창조에 불가피한 제1요건이다. 상상의 날개를 절단시키는 곳에 작가들의 위축·패배의식만 남아있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영화예술은 정체만 있을 뿐이었다.
영화의 대중성은 결코 저속·저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표현의 통제만을 일삼던 그동안의 당국의 관료주의는 이것을 오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지….
국민대중의 향상된 지성과 의식을 너무 경시해 왔고, 세계를 향한 영화예술의 과시가 곧 국위선양이라는 시각에 너무 둔감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인 사회비판의식을 무조건 억제하려한 당국은 「영화진흥」을 구두선으로만 내세울 뿐 한국영화발전에 별로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 한 본보기로 문예진흥기금을 들 수 있다. 영화관에서 모금한 그것을 영화외적인데 전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뚜렷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영세한 영화계를 더욱 영세하게 하는 악성제도가 아닐 수 없다.
명분뿐인 영화진흥공사는 그 관료체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투자비율에 어긋난 낭비성과 비목적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영화를 생명처럼 사랑하는 순수 영화인들의 손으로 기획·운용되는 것이 선진국의 많은 예처럼 바람직한 것이 아닐는지.
요리사가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그에게 걸맞는 재료와 조미료를 제공하지 않은 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라면 이는 강요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 영화계에는 잘 숙련된 영화인들이 많이 있으나 아직도 영화 후진국의 꼬리를 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는『아빠는 외출중』 이라는 유고슬라비아 영화가 그랑프리를 따냄으로써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티토」의 카리스마적 독재가 종식되면서 유고의 영화계는 자유의 바람이 불었고 마침내 그들은 이러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을 갖췄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고 영화인의 용기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우리정부도 우리영화인들에게 이같은 여건을 마련해줄 때가되었다. 영화발전은 곧 문화예술의 발전이고 문화예술의 발전은 곧 우리나라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재의 개방과 표현의 자유로 이어지는 창작의 자유-그동안 영화인들이 얼마나 목청 높여 요구해온 문제들인가.
그 외에도 영화계를 묶어놓은 제도적 기구들인 공륜·영화진흥공사·문예진흥원과 각종 영화규제법률을 과감히 개폐시키고 영화계의 자율에 맡겨질 수 있는 민주시대를 기대한다.
텔리비전의 공세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감소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는 나름대로의 전향적인 타개책을 강구하지 못한채 오히려 계도성이 중시되는 「행정지도」의 차원에 이끌려 왔다. 그 결과 예술성은 차지하고라도 다양한 관객의 욕구와 선택의 폭조차 스스로 제한하는 역기능을 낳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공륜의 시나리오 사전검열과 필름 심의로 2원화된 영화검열제도다. 그와 같은 제도적 결함 때문에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는 현실 비판적인 영상은 물론 생존을 위한 서민의 몸부림 또는 제목마저 삭제되고 변질되는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아래 얻은 것은 영화인들의 무력감과 요령이요, 잃은 것은 예술적 차원에서의 현실을 담는 리얼리즘이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소아병적 소재·표현의 금기는 타파되지 않으면 안된다.
행정적으로 영화를 「과보호」하려는 관료의식이 남아있는 한 한국영화는 발전할 수 없다. 또한 영화인들 자신도 그러한 금기타파에 앞장서려는 노력을 보여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당국이 행사해온 영화검열을 민간주도의 심의기구로 바꿔 각본의 사전검열부터 없애고 표현의 자유, 소재의 개방과 함께 책임도 돌아가도록 자생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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