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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거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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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자기애(自己愛) 또는 자기도취를 의미하는 나르시시즘은 거울에서 시작된다. 호수에 비친 제 모습에 도취해 물에 빠져 죽은 신화 속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에게 호수는 거울이었다. 생후 6~18개월 된 어린애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매우 즐거워한다. 자신의 이미지에 매료되고 사로잡히는 원초적 나르시시즘이다. 프랑스 철학자 라캉(1901~81년)은 이를 '거울단계'라고 불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나르시시즘이 존재한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용모에 스스로 취하는 게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1856~1939년)는 자신의 육체.자아.정신적 특징이 리비도(성본능)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했다. 그는 나르시스적 사랑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 한때 자신의 일부였던 어떤 사람 등을 사랑하는 것이다.

거울을 보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본지 1월 13일자 15면).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 크로스섹슈얼 등 생소한 용어들이 속속 등장한다.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패션과 외모에 집착하는 남성을 지칭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형수술은 물론이고 매니큐어, 눈썹 다듬기, 색조화장, 헤어스타일 관리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분류에 따르면 '미래의 나'를 꿈꾸는 나르시스트에 속한다. 남성 잡지에 나오는 모델을 꿈꾸며 자신을 '꽃미남'으로 꾸민다. 나르시시즘이 심해지면 정신분열병이나 편집증으로 발한다.

이런 현상 속에 스며있는 얄팍한 상업주의를 간파한 사람은 영국의 문화평론가 마크 심슨이었다. 그는 1994년 일간 인디펜던트에 '거울 남자들(Mirror Men)이 온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남성잡지들은 세련된 복장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자기도취적(나르시스적)인 젊은 남성의 모습들로 채웠다. 잡지들은 다른 젊은이들에게 부러움과 욕망을 갖고 잡지 속의 남성들을 연구해보라 권유했다." '남성다움'이란 이름으로 억압된 남성의 나르시시즘이 장삿속과 맞물려 새로운 남성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남성의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강인한 인상과 우람한 육체를 바탕으로 남성 우월론을 내세운 마초주의적 남성상은 퇴물이 된 지 오래됐다. 여성처럼 부드럽고 세련되고 섬세한 남성상이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화장하는 남성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궁금하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