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떳떳하면 탄핵심판정 직접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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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명운뿐 아니라 국정의 향배를 가를 역사적 재판이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됐다. 헌재는 앞으로 박 대통령이 파면될 만큼 중대한 탄핵소추 사유가 있었느냐는 점을 심리한다. 박 대통령의 헌법 준수와 위법적 행위의 여부를 가려내 최고 통치권자라도 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절대적 가치를 확인할 것이다. “헌법이 상정하는 기본적 통치구조에 변동을 초래하는 위기 상황”이라는 박한철 헌재 소장의 상황 인식은 적절하다. 헌재가 신속한 심리를 강조한 것은 불확실성을 빨리 종식해 달라는 국민 뜻에 부응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헌재, 파면 여부 결정할 본격 심리 착수
결백하다면 공개해명 못할 이유 없어
대혼란 속히 매듭짓도록 돕는 게 도리

그러나 작금의 사태를 촉발한 1차 원인 제공자인 박 대통령의 비협조는 실망스럽다. 어제 1차 변론은 박 대통령이 나오지 않아 9분 만에 끝났다. 추후 변론에도 불참할 예정이어서 의혹과 탄핵의 주인공이 빠진 채 진행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욱 걱정스러운 장면은 박 대통령이 헌재 출석은 거부한 채 장외 여론전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보여준 민심과 동떨어진 현실인식을 계속 고집하겠다는 뜻이라면 절망적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조사, 특검 수사, 형사재판 등에서 일부 확인된 내용마저 “손톱만큼 없다” “완전히 엮은 것” “누구 봐줘야 되겠다고 한 적 없다” 등으로 강변하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순실 등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에 따른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위반, 대기업 강제 모금 등 대통령의 권한 남용, ‘세월호 7시간’ 등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혐의 등이 통치권자였던 자신과 한 점의 관련도 없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누구든지 해명할 자유는 있다. 그렇다고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법정이 아닌 곳에서 직접 자리를 만들어 일방적 얘기를 펼치는 것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다. 정치적 수명을 연장하려는 지연술이요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 중인 관련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보내 원격조종하려는 꼼수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불출석한다고 해도 헌재 심리가 큰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이다. 5일과 10일로 예정된 2, 3차 변론기일에 청와대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최순실씨, 안종범 전 수석 등을 불러 심문함으로써 국정 농단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헌재 심리와 함께 특별검사의 수사,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들에 대한 법원 재판이 ‘3각 축’으로 진행되면서 더 많은 증거가 나와 진실을 보태줄 것이다.

어려운 과도적 통치 위기와 사회적 대혼란을 제거해 나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 대통령도 일조해야 마땅하다. 외곽에서 푸념만 늘어놓는 대통령에게서 마지막 권위와 자존심을 찾을 수 있을까. 떳떳하다면 법이 마련해 준 심판정에서 밝히는 게 상처받을 대로 받은 국민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