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토론문화의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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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정치는 다원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제정치에 대립된다. 상대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절대주의정치와도 반대된다.
이것은 자기 이외에 타인이 있고 양자는 평등하다는 기본전제 위에서 성립된다.
그러나 다원성과 상대성은 새로운 하나로 결집된 컨센서스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단순한 분열이요, 대립일 뿐이다.
이같은 분열과 대립을 하나로 묶는 과정이 바로 토론이요, 비판이다. 서로 다른 견해와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거쳐 공동선에 이르는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이것 없이는 민주정치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타협도 불가능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전통에서는 이같이 건전한 토론과 비판의 관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언쟁은 있어도 토론은 없고. 반대는 있어도 비판은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대화문화였다.
그러나 3일 연세대에서 있었던 서울지역 대학생 시국토론회는 그런 황량한 우리 전통에「신선한 희망」을 주었다.
우선 그같은 토론 집회가 아무런 방해없이 질서 정연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부터가 달라진 모습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비판과 반대를 거부하는 세력에 의해 원천봉쇄와 연행과 최루탄으로 유산됐을 성질의 집회였다.
이날 1만5천명이 모인 회의장에서 초청연사들은 각자의 자유로운 의견을 펼 수 있었고 학생들은 평화로이 토론과 행진을 진행한 후 질서있게 해산했다.
토론도중 좌경운동권으로 보이는 2백여 학생이 「혁명으로 제헌의회」등 과격구호를 외쳤으나 다수의 대학생들은 가차없이 야유를 보내 곧 잠잠해졌다.
이것은 이번 시위에 나서서 민주화를 외친 학생 대부분이「혁명」보다는 합법적 절차에 의한 개혁을 요구할 뿐 아니라 기존체제를 파괴하고 새로 혁명적 성격의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헌법의 「개정」이 아니라「제정」해야 된다는 과격논리에도 반대한다는 명백한 의 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국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융통성 없는 보수도, 과격 급진적인 혁명도 아니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개혁의 계속이 안정과 발전을 동시에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다. 이것은 이번 대학생 시국토론회가 건전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결집해 낸 컨센서스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학생들의 기본 사고는 건전하다고 평가한다.
어쨓든 이번 대학생 시국토론회가 보여준 이지적인 토론은 우리사회에 합리적인 토론문화를 열어 나가는 새로운 출발로 보고자 한다.
건전한 토론과 비판없이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발전에는 중지가 필요하고 그것은 합의를 거쳐 보다 높은 차원의 「하나」로 결집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 사고요, 행동이다.
건전한 토론문화는 학교교육과정에서부터 가르치고 생활화해야 할 뿐 아니라 각분야의 권력이 힘으로 반대의견을 압살해온 과거의 관행을 청산함으로써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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