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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잠정 중단] 北, 鄭 빠진 현대와 情 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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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회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북한이 5일 예상보다 강도 높은 수를 들고 나왔다. 금강산 관광의 중단을 비롯해 북한이 내놓은 조치는 호흡 조절을 통해 鄭회장 사망이 대북사업에 미칠 파장을 일단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관광 중단 속내=북한은 관광 중단의 이유를 '(관광 지속이)고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내세웠다. 하지만 鄭회장의 죽음으로 회생 여부가 불투명해진 금강산 관광 등 현대의 대북사업을 재검토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북한은 사업 주체에 대한 검토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4천5백억원에 이르는 자본금을 모두 까먹은 현대아산에 대해 그동안은 鄭회장의 얼굴을 보고 사업을 해 왔지만 이제는 냉정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연구원 오승렬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은 현대아산과 사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모색할지 결정해야 한다"며 "해로 관광은 일정기간 후 재개될 수 있겠지만 육로 관광은 당장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鄭회장의 사망을 "한나라당이 불법.비법으로 꾸며낸 특검의 칼에 의한 타살"(4일.아태위원회 성명)이라고 규정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타살 주장은 특검에 대한 불만 표시"라고 풀이했다.

여기에는 5억달러 비밀 송금과 과도한 금강산 관광 대가(총 9억4천2백만달러) 챙기기 등으로 현대를 궁지에 몰아넣은 자신들의 책임을 '남조선 보수층'에 떠넘김으로써 대북 비판 여론의 예봉을 비켜가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속사정이 이렇다 보니 鄭회장을 '북남 협력의 개척자'등으로 찬양하면서도 정작 조문단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또 鄭회장의 유지(遺志)와 어긋나게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 드러난다. 이와 함께 북한이 남북 화해.협력 정책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의 중지를 통해 남측을 압박함으로써 정부의 남북협력기금 지원 등 경제 실리를 거머쥐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응책 못 찾는 정부=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철도.도로 실무접촉 연기 등이 불거지자 정부 부처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鄭회장이 사망한 4일 "남북 경협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고 북한이 조문단도 보내 올 것"이라고 낙관하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북한이 5일 鄭회장 사망 하루에만 금강산 관광과 경협 합의서 발효, 철도.도로 실무접촉 등 경협 일정에 잇따라 제동을 거는 조치를 던졌지만 정부는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선 금강산 관광에 책정했다 보류된 남북협력기금 2백억원을 투입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통일부 당국자는 "섣부른 지원 방침 논의는 북한이 협력기금을 자신들의 금고로 여기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개발원 조동호 북한경제팀장도 "정부가 2001년 말 정부보조금 지급을 결정해 1년 동안 시행했지만 달라진 게 뭐냐"며 "보조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영종.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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