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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번영되자 정치개정 요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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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적 번영은 동아시아의 중산층들로 하여금 정치개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하고 있다. 이들 중산층은 오랫동안 안정을 누리는 댓가로 권위주의적 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이들 신흥 부유층과 그들의 정부가 당면한 도전은 어떻게 하면 부를 낳은 그들의 정치제도를 손상시키지 않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이룩하는가하는 문제다.
한국이 바로 이같은 현상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경우다. 이나라에선 중산층과 젊은 회사원등 경제성장의 수혜층이 지난 6·10대회이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과격시위학생들에게 지지를 보냈다.
이는 지난해 2월의 필리핀을 연상시킨다.
필리핀에선 여유있는 비즈니스맨·가톨릭신부·학생들이 20년간의 마르코스장기독재를 쓰러뜨린「민증의힘」(피플즈파워)에 가세했다. 중산층의 각성이라는 점에서 필리핀보다는 덜 드러매틱하지만 아주 유사한 사례가 대만이다. 자유중국정부는 지난해 38년간 계속된 일당·계엄통치를 개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강력하고 잘 교육된 중산층의 민주적 욕구를 내세웠다.
49년부터의 계엄령을 해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유국화 행정원장은 사회가 민주정치의 책임을 다룰수 있을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중공에서도 경제자유화와 대서방문호개방이 지난해 12월 학생들의 정치개혁 요구의 한 원인이 되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등소평의 경제자유화정책을 옹호하는 지지파들과 이 정책이 당의 정치적 통제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파로 분열돼 있다.
한국의 가두시위와 필리핀에서의 격변이 있긴 했지만 아시아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유화 물결은 그러나 20여년전 스웨덴 경제학자「군나르·뮈르달」이 지적한것 같은 아시아인이 겪는 갈등을 연상시킨다.
「뮈르달」은 그의 저서『아시아의 드라머』에서 높은 이상과 쓰디쓴 현실경험, 다시말해 변화·개선을 바라는 욕망과 그 욕망을 위해 댓가로 치러야할 정신적 욕구 억제라는 내적 갈등을 지적했다.
「마르코스」와「아키노」의 지도력에 대한 필리핀 중산층들의 반응에서도 이 갈등은 드러나고 있다.
「마르코스」가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할 당시 중산층의 상당수가 계엄령을 지지했었는데 그들은 계엄렴으로 당시의 사회불안을 종식시킬수 있을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중산층들은 점차「마르코스」의 부패한 경제정책에 혐오감을 느끼게 됐다.
이들은 결국 1983년「아키노」 전상원의원의 암살로 경제적 혼란이 야기되면서「마르코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상인·은행가 및 사업가들에게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지주의 딸인「아키노」가「마르코스」나 급진좌익대신 적당한 대안이 되었던것이다.
필리핀의 영향력있는 중산층들은「아키노」대통령에게 좌익세력의 토지 재분배 등 사회·경제적인 개혁요구에 굴복하지 못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요구는 중산층의 이익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자유중국의 정치개혁은 급진적인 야당세력을 누르면서 일부 중산층의 욕구를 달래주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것 같다.
대만국립대학의「후·푸」교수는 작년 12월 총선에서 중산층 유권자들이 국민당후보나 점진적이고 온건한 개혁을 주장하는 야당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선거에서 21.6%의 지지를 얻은 야당세력은 주로 지식인층이나 노동자계층으로부터 지지를 얻어냈다.
홍콩에서는 84년부터 민주개혁에대한 중산층 관심이 고조됐는데 이는 중공당국이 홍콩을 97년에 반환받은 이후 적어도 50년동안은 민선의회제도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후였다.
최근 中共은 홍콩에서의 주요 정치변화를 반대한다고 못박고 있다.
홍콩 중문대학 정치학과「조셉·쳉」교수는 홍콩의 중산층이 추진했던 민주화운동은 열기를 잃어가고 있는데 이는 배경당국을 분노케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태국에서는 중산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안정에 대한 욕구로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 태국의 정치는 전통적으로 왕실과 관료, 그리고 군부의 전유물이었다.
태국의 상인층은「프렘·틴술라논드」수상 정부의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나 군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임명제 상원보다는 민선의 하원을 강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방콕의 탐마사트대학「나롱·신사와스디」교수는 중산층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것은 권위주의적 사회의식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기보다는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롱」교수는『중산층들은 도전하기 보다는 협력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들은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접근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정치개혁이라든가 민주주의로 향한 정치발전쪽으로의 접근은 소용없기 때문이다. 부유한 정치인들은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더이상 태국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있다』고 밝히고 있다......【마닐라 AP연합=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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