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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은 고립된 섬, 집단행동 할 때만 제구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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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건축] 걸음마 단계 광장 문화

최근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장소는 ‘광화문광장’이다. 광화문광장은 한국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인 듯하다. 과거에는 여의도광장이 그랬다가 지금은 광화문광장으로 계보가 이어졌다. 광장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광장문화는 단조롭다. 주로 집단행동만 나타난다. 광장은 보통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행위를 담아내는 장소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여의도광장의 집회, 시청 앞 서울 광장의 ‘붉은 악마’ 축구 관람, 국군의 날 행사, 광화문광장의 정치집회 등 주로 한 가지 주제로 많은 사람이 모여 세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반면에 유럽의 광장은 집단행동 외에도 일상의 다양성을 담아내는 생활밀착형이다. 이처럼 유럽과 우리나라의 광장문화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생활 밀착형 유럽의 광장과 달리
6차로 도로에 막힌 세로로 긴 광장
소통 어렵고 가볼만한 가게도 없어
도로 점유 집회 땐 여러 이벤트 가능

광화문광장이 만들어지기 전 세종로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중앙청과 서울 시청을 연결하기 위해 식수한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후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 중앙청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했다. 경복궁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궁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복궁 건물들은 중경을 지우는 한옥의 담장과도 같다. 이런 경치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지금의 광화문광장 위치다. 지금처럼 은행나무를 뽑아 광장으로 바꾼 것은 경복궁의 가치를 살리기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다. 광화문광장은 기존 세종로의 16차로에서 4개 차로를 줄여 가운데에 광장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사실 이름처럼 광장으로서 잘 작동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광화문광장은 6차로 도로를 건너야 갈 수 있다. 사람들은 4차로 이상의 도로는 잘 넘어가지 않는다. 반대로 3차로 이하의 도로는 잘 건너간다. 3차로 이하의 차도는 무단횡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단횡단이 가능하면 심리적으로 건너편까지 내 영역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상권은 보통 2~3차로 정도는 넘어서 하나로 통합되지만 5차로 정도의 차도를 두고는 상권이 나뉜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좌우로 6차로의 도로가 있으니 고립된 섬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세로로 긴 비례이다. 보통 광장은 가로·세로의 길이가 비슷한 원형이나 정방형이 많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폭 34m, 길이 740m로 가로·세로 비율이 거의 1대22 정도가 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기 어렵다. 우리가 소풍을 가면 한 반이 수건돌리기를 할 때 동그랗게 앉는다. 이럴 때 전체가 하나로 움직일 수 있다. 반면에 한 반이 2열종대로 줄지어 등산하면 앞사람과 뒷사람은 소통이 안 된다. 광화문광장은 2열 종대밖에 안 되는 비율의 공간인 셈이다. 공간이 좁고 길면 로마의 ‘나보나 광장’처럼 주변에 가게가 많아 작은 공간으로 쪼개져서 다양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가게가 없다. 가게가 없다는 것은 오는 사람들이 선택할 다양한 이벤트가 없다는 거다. 세종로와 비슷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는 좌우로 상점들이 즐비하고 넓은 인도에 노천카페도 있다. 그에 비해 광장에 접한 수백m 구간에 KT 사옥, 미 대사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정부 서울청사, 세종문화회관밖에 없는 광화문광장은 한참을 걸어도 들어가 앉아서 광장을 쳐다볼 가게가 없다. 이벤트가 없다 보니 광화문광장에서는 작은 이벤트도 주목 받기 쉽다. 유독 1인 시위가 많이 열리는 까닭이다.

[정치집회 열기엔 천혜의 조건 갖춰 ]

이같이 넓은 차로로 나뉜 조건과 좁고 긴 비례, 이벤트가 없는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도로를 점유해 집회를 열 때다. 6차로 도로를 점유하면 건너갈 차선이 없어지고 가로 폭이 넓은 광장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집회 주최 측은 다양한 이벤트를 채워 넣는다. 현재 광화문 앞 집회의 공간 형태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광화문광장에서 모일까. 일단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청와대가 가까우며 600년 전통의 정치공간인 경복궁 앞이다. 게다가 좌우로 높은 건물이 있어 함성을 질렀을 때 소리가 퍼져나가지 않는 음향 조건도 갖추고 있다. 주변 건물이 함성을 증폭시키는 음향반사판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소리는 높은 건물이 없는 앞쪽 경복궁과 청와대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광화문광장은 광화문을 중심축으로 좌우 대칭의 모습을 띠고 있어 누군가가 그 중심축에 서게 되면 주목 받을 수 있는 천혜의 공간 구조다. 그러니 정치집회의 장소로 이보다 더 적당한 곳은 전국에 없다.

한국엔 왜 유럽 같은 광장문화가 없을까. 이유는 정치·경제·기술·기후·종교·건축재료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조선시대까지 경제구조가 농업사회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땅에 흩어져서 살았다. 농업사회는 1㎢당 인구밀도가 40~60명 정도다. 반면에 광장은 상업이 발달한 고밀화된 도시에서 만들어진다. 정치적 이유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은 많았지만 비교적 국내에서는 평화로운 나라여서 고밀 도시가 안 만들어진 이유도 있다. 조선 8도가 중앙행정부에 의해 잘 관리되던 우리나라는 대구에서 전주를 침공하러 오지 않는다. 그러니 전주나 대구에 큰 성이 필요없다. 중세 유럽의 도시들은 봉건영주시스템하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영주는 성을 만들고 성 주변 토지에서는 농노들이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가 옆 도시에서 침략하면 성 안으로 피신시켜 지켜 주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성은 크게 쌓으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 최소한으로 만든다. 좁은 성 안에 사람이 모여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가게가 밀집된 광장도 생겨나고 도시가 형성된다. 반면에 우리는 인구밀도가 낮게 살다 보니 항시 열리는 가게도 없고, 5일장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유럽선 기독교 예배 문화 덕에 광장 발달 ]

유럽에 광장이 발달한 것은 종교와 건축재료의 영향도 있다. 혼자 수행하는 불교와는 달리 기독교는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 예배는 모여서 설교를 듣는 행위가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대형 실내공간이 필요해 큰 성당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성당은 돌로 건축한다. 돌로 대형 건축물을 만들면 200년 가까이 걸린다. 노트르담 성당은 1163년에 시작해 170년이 걸렸다. 공사 중에는 돌을 다듬는 일을 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보통 뒤쪽 제단부터 짓기 시작해 정면을 마지막에 건축하게 된다. 그래서 성당 앞의 공간이 돌 다듬는 공간으로 쓰인다. 자연스럽게 200년 동안 돌 다듬는 공사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들어서고 마을이 형성된다. 완공 후에 돌을 다듬던 성당 앞의 터는 자연스럽게 광장이 된다.

교회가 지어진 이후에도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광장은 사용된다. 그래서 보통 유럽의 교회 앞에는 광장이 위치하고 그 광장 크기는 교회의 길이와 비슷한 크기를 지닌다. 우리는 200년 동안 지은 고층 건축물이 없다. 교회처럼 대규모로 사람이 모이는 행위도 없다. 그러다 보니 생활과 밀착된 광장이 안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를 사는 우리는 광장 말고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광장문화는 앞으로도 존속될 것이다. 유럽의 수천년 된 도시 역사와는 달리 우리는 고밀화된 도시에서 생활한 지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의 광장문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21세기형 광장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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