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더 깊게 더 넓게 읽어야 하는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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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전 1국> ●·판윈러 5단 ○·신진서 6단

15보(160~182)=살얼음판 위에서 반집의 경계를 다투는 끝내기 싸움. 어느 한쪽이 발을 잘못 디뎌 깨진 얼음판 아래로 빠져드는 순간 승부도 끝난다. 60부터 82까지, 밀고 밀리는 몸싸움에 숨이 막힌다. 치열하게 반집을 다투지만 국면의 경계는 복잡하지 않으니 더 괴롭다. 손자병법마저 ‘전쟁은 속이는 것(兵者, 詭道也)’이라 하는데 모든 것이 훤히 노출된 평면 위에서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속인단 말인가. 그래서 바둑은 고차원의 지략(智略)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의 계산이 더 멀리 뻗어 있느냐, 누가 끝까지 보고 있느냐의 싸움. 속이는 게 아니고 더 깊게 더 넓게 계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 82는 괜찮을까? 여기서 ‘참고도’ 흑1로 끊으면? 백a면 흑b로 백 여섯 점이 속절없이 떨어질 텐데 어떻게 하려고? 그런 생각은 부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마추어 초급자의 수읽기. 흑1이면 당연히 백a로 잇지 않는다. 중앙 흑의 형태에는 약점이 있어서 82로 막는 한 호흡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백2로 먹여치고 백4, 6까지 모두 선수라 흑은 반발할 기회가 없다(5…2). 흑▲를 크게 삼키고 유유히 백8로 살면 흑a로 끊겨 백 두 점을 잃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횡재(?)다. 당연히 프로들의 승부에선 나오지 않을 그림.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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