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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타봤습니다] 키 4m짜리 국산 로봇…내 동작따라 주먹이 움직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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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인체감응형 로봇 ‘메소드-2’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로봇 중에서 국내 최대 크기의 로봇이 등장했다. 한국미래기술이 제작한 인체감응형 로봇 ‘메소드-2’다. 22일 로봇이 움직이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되자 16만명이 접속하며 화제를 모았다. 기존에 없던 거대 로봇을 완전히 새로운 방법(method)으로 제작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이 로봇을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로봇개발센터에서 26일 본지 기자가 직접 조종해봤다.

한국미래기술이 개발한 인체감응형 로봇 ‘메소드-2.’. [사진 전민규 기자]

한국미래기술이 개발한 인체감응형 로봇 ‘메소드-2.’. [사진 전민규 기자]

메소드-2의 키(전고)는 4m로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옆 사무실 찻잔이 흔들릴 정도로 땅이 울렸다. 메소드-2 조종석에 앉았더니 조종석 공간은 의외로 넓고 인체공학적이었다.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붉은색 조명이 영화를 연상케 했다. 드림웍스·루카스필름에서 영화용 로봇을 디자인했던 비탈리 불가로프 구상디자이너(31)가 실제 로봇을 디자인했다.

‘태권V 동경’ 미래기술 임현국 대표
조종실서 몸으로 지시하는 로봇 개발
탄소섬유로 교체 땐 무게 1.2톤
부족한 안정·내구성 보완이 과제

로봇은 상체만 조작할 수 있었다. 어깨부터 손가락까지 이어지는 보조기구가 인체를 인지했다. 팔과 손목 관절은 물론, 손가락 움직임까지 조작 가능하다. 로봇팔은 생각보다 가볍게 움직였다. 태권V처럼 정권찌르기 동작을 취하자 130kg에 달하는 거대한 로봇 주먹이 ‘휙’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내년 하반기 공개할 차세대 모델 메소드-3는 페달을 추가해 하체까지 조종이 가능하도록 개발할 계획이다.

‘로보트 태권V’를 연상케하는 조종석(우측 상단)에서 보조기구를 이용하면 130㎏에 달하는 로봇팔이 인체 동작을 모사해 움직인다. [사진 전민규 기자]

‘로보트 태권V’를 연상케하는 조종석(우측 상단)에서 보조기구를 이용하면 130㎏에 달하는 로봇팔이 인체 동작을 모사해 움직인다. [사진 전민규 기자]

로봇 후면에는 전력을 공급하는 케이블이 연결돼 있다. 메소드-2는 100% 전기로 구동한다. 분당회전수 5000~6000rpm급 전기모터 46개와 전기배터리를 탑재해 케이블을 제거해도 1시간 30분 정도는 자체동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로봇 전문가들은 메소드-2의 하체에 주목한다. 인간처럼 두 다리로 직립보행하는 디자인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로봇기술에서 직립보행은 최고난이도 기술이다.

메소드-2는 아직 안정성은 부족했다. 다리를 움직이면 몸체가 좌우로 꽤 흔들린다.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울퉁불퉁한 길에서 자세를 제어하기도 어렵다. 내구성 확보도 난제다. 관절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쉴새 없이 마찰이 발생한다. 현재 상용화된 소재기술로는 이를 견디기 어렵다.

한국미래기술이 우리기술로 만든 로봇 매소드-2의 등에는 전력을 분산시켜 주는 장치인 모터드라이브가 설치돼 있다.

한국미래기술이 우리기술로 만든 로봇 매소드-2의 등에는 전력을 분산시켜 주는 장치인 모터드라이브가 설치돼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때문에 로봇 전문가들은 하체 기술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미래기술로부터 연구를 제안 받았다는 한 로봇 전문가는 “기계공학적으로 실용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단계”라고 평가하며 “천정 쇠사슬로 로봇을 고정한 것도 하체 내구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전문가는 “규모로 보면 국내 최대 로봇이지만 별개의 기술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엄청나게 혁신적인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메소드-2 로봇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자세 제어를 비롯해 동력·모터드라이버·가속기·금속성형·구조설계·경량유압 등 다양한 기술을 조합해 실제 로봇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임현국 한국미래기술 대표(44)는 “기존 로봇 전문가들의 지적은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며 “상용화의 걸림돌이 아니라면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소재를 탄소 섬유로 교체하면 무게를 최대 1.2t으로 줄일 수 있어 내구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내에 탄소섬유가공센터도 보유하고 있다.

로봇 조종석에 탑승해 외부를 바라본 모습

로봇 조종석에 탑승해 외부를 바라본 모습

임 대표에 따르면, 다음 버전인 메소드-3는 세 가지 측면을 개선한다. “철판을 가볍게 찢어버릴 정도로 로봇팔의 파워를 보완할 겁니다. 또 울퉁불퉁한 길에서 보행할 수 있도록 성능을 개선하고 디자인도 완전히 바꿀 겁니다. 이미 비탈리 디자이너에게 ‘가분수가 아닌 로봇 형태로’ 신규 디자인을 의뢰했어요.”

어린 시절 임 대표의 동심을 흔들었던 만화는 태권V였다. 그가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홈페이지 도메인도 1976ir.com이다. 1976년 태권V가 개봉한 해, ir은 ‘상상을 현실로(from Imagination to Reality)’를 뜻한다.

임 대표가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동심을 이루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는 로봇 용도에 대해 그는 “우리가 아닌 클라이언트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의뢰인이 원하는 어떤 로봇이라도 제작하기 위해 지금은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한국미래기술의 일본법인 퓨테크는 후쿠시마현 재난대응본부와 함께 재난 대비용 로봇을 공동개발하고 있다고 임 대표는 전했다. 지진·화재 등이 발생한 경우 재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이다.

조종사는 매소드-2의 손가락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조종사는 매소드-2 손가락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조종석에 탑승해 버튼을 조작하면 로봇의 손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조종석에 탑승해 버튼을 조작하면 로봇손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임 대표는 대구상고가 컴퓨터 특성화고등학교로 선정되면서 120여대의 8비트 애플 컴퓨터를 구매하자 컴퓨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대구상고로 진학했다. 고교 졸업후 계명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지만 학업을 뒷전으로 하고 컴퓨터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 미등록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십여년 동안 정보통신(IT) 업계에서 일하다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로봇을 개발한 한국미래기술의 모기업은 한국인터넷기술원이다. 경기도 판교에서 온라인정보제공업·데이터베이스업을 하며 클라우드 서비스와 디지털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IT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로봇 연구를 위해 2014년 한국미래기술을 설립했다.

일각에서는 한국미래기술이 투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 영상을 공개한 게 아니냐고 본다. 하지만 임 대표는 “한국미래기술은 전액 모기업 사내유보금으로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군포=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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