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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도 술인데 무턱대고 먹다가는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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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26면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그리스 신화의 주신,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에선 바쿠스로 불린다).


제우스와 아름다운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항상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모습으로 혹은 손과 머리에 포도를 한아름 장식한 모습으로 친근한 인물이다. 그럼 디오니소스를 경배하며 와인을 즐겼던 아테네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기원전 그리스 조각상처럼 모두 멋지게 생겼을까? 아마 지금 시대의 그리스인들과 많이 다를 순 있어도 그들이 와인에 취해 있었다면 현재의 주정뱅이들과 별 차이가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술은 인종을 막론하고 과하면 흐트러지게 하니까.

로댕의 조각 ‘코가 깨진 남자’(1864·사진)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고뇌에 찬 이 늙은 남자의 두상은 로댕이 스물넷에 만든 초기 작품으로 그리스 조각품을 연구하며 터득한 인간의 해부학적 특징을 잘 묘사해 놓았다. 이마에 새겨진 굵은 주름에서는 삶에 지친 모습이 확연히 느껴지는데, 특히 미간을 지나 코로 내려오면서 바르게 서 있어야 할 콧대의 중간 부위가 무너져 내려앉은 모습에서 고통의 정점을 이룬다.


모델은 로댕의 이웃에 살던 술 주정뱅이 비비로 알려져 있다. 로댕이 추구했던 사실적 묘사의 영감을 이 모델이 준 것 같다. 하지만 멋지고 예쁜 조각상만 추구하는 전통에 머물러 있던 당시 아카데미는 로댕의 이같은 예술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는 결국 작가의 등용문이었던 살롱에서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와인 전문가로 활동하는 나는 이 두상의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어떻게 모델의 코가 무너지게 되었을까 역시 궁금했다. 30년 전 프랑스 유학 당시 거리엔 거지들이 무척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대낮에도 코가 삐뚤어지게 취해 있었고 수퍼마켓에서 파는 저급 벌크 와인들을 큰 병에 담아 늘 옆에 끼고 다녔다. 술이 떨어지면 손을 벌려 구걸을 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 모습을 로댕의 작품에서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바렌 거리에 있는 로댕 박물관 소장품이다. 남자의 두상은 일층 오른쪽 방 창가에 놓여 있다. 햇볕이 들면 무너진 코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18세기에 지어진 박물관 본체 건물은 이전엔 호텔이었다. 당시 로댕을 비롯해 마티스·릴케·이사도라 덩컨 등 많은 유명 예술인이 이 건물 안에 사무실을 갖고 일했다. 1911년 프랑스 정부는 이 건물을 당시 소유한 종교 단체로부터 사들였고 1919년 로댕은 자신의 모든 작품과 저작권을 정부에 기증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박물관을 이곳에 열었다.


유대 랍비의 교훈집(탈무드)에 따르면 노아가 포도밭을 만들 때 악마는 네 동물의 피를 이곳에 뿌렸단다. 그래서 와인을 마시면 처음엔 양처럼 순하고 다음엔 사자와 같이 포악해지고 좀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별별 짓을 다 하는데 마지막엔 돼지처럼 추악해진다고 한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코가 깨진 남자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와인은 즐기되 중간중간 자신의 콧대가 무사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김혁


와인·문화·여행 컨설팅 전문가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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