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맞은 대북 정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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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31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한 이후 북한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최근엔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된 핵탄두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문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두 사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듯 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새로운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핵협상 타결 전 이란에 대한 제재와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 제재안에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처음 적용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이나 기업 등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 이번 조치로 손실을 입게 될 회사들은 대부분 중국 기업이다. 중국은 대북 무역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자 북한의 주요 광물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와 거래하는 중국의 기업들은 이제 두 나라 중 어느 곳과 거래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대북 제재 결의 2270호에 동의하게 된 데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재배치 가능성과 함께 대북 무역을 하는 중국 기업이 손실을 입게 될 것에 대한 우려도 한 몫했다.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는 기대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믿음과 달리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큰 변화다. 최근 북한에 가해진 제재 조치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2270호와 미국의 새 대북 제재 행정명령이 더해져 전보다 더 광범위하게 북한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북한은 정권에 충성할 관료를 위해 일정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인해 원자재 수출을 통한 재정 확충과 해외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다음달에 있을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흠집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위기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8일 사설을 통해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취임 직후 “'제2의 고난의 행군’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것이 무색한 상황이다. 만약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함께 가해진다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경제 발전을 함께 추구하는 병진(竝進) 노선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앞으로의 상황은 관계 당국의 정책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발동하는 것으로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러시아의 행보도 명확해졌다. 앞으로 러시아는 북한과 국제 사회를 연결하는 중간자의 역할을 자처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6일 국회 연설에서 대북정책의 방향을 확실히 했고, 일본도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결국 중국과 북한의 행보만 결정되지 않은 셈이다.


중국의 경우 북한과의 관계 유지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여러번 바뀌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후 많은 이들이 북·중 관계가 냉각기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10일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며 중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북한은 지속적인 도발을 일으키며 중국 정부의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정책이 또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북한의 연대가 흐트러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6자 회담 뿐 아니라 북한을 제외한 5자 회담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5자 회담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중국이 태도 변화를 시사한 것이다. 만약 5자 회담에서 각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해내고 북한을 단호하게 제재하기로 합의한다면 국제 사회의 대북 정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지난달 31일 오바마 대통령과 왕이 외교부장의 회담 이후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에 관해 정말로 힘을 모으기 시작한다면 그 전환점은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오게 될 지 모른다.


그동안 중국이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와 북한의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올해 중국의 행보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북 제재 정책은 미국과 다른 동맹국의 주도로 수립됐고 중국은 이를 수동적으로 따랐다. 중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다른 국가의 대북 정책이 중국의 이익에 반할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북한의 선택은 더 복잡하다. 북한은 제7차 노동당 대회 전까지는 국제 사회의 압박에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저항적인 모습으로 상대국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법 밖에 없다. 최근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가 핵무기로 미국 워싱턴 DC를 공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북한이 다음 달 노동당 대회 후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비록 그 시점에서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와 대등한 협상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더라도 제재 없는 협상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핵 프로그램의 폐기가 기본 조건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토대로 국제 사회를 위협하는 것이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대국들이 북한의 소형 핵탄두 개발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때만 이것이 협상 수단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제재가 정부를 흔들기 전에 소형 핵탄두 개발을 증명해야만 한다. 자신들이 이것을 관리할 수 있고 혹시 관리에 실패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반도의 상황은 오랫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 그리고 중국의 새로운 정책 변화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지금의 정책을 얼마나 고수할지도 알 수 없다. 아직까지는 연초와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2016년을 마무리하며 연초와 연말의 대북 상황을 비교할 때 그 어느때보다 차이가 큰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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