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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매체의 힘은 단순·충격·우아 온라인서 느낄 수 없는 ‘촉감’ 선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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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8 면

프랑크 뒤랑의 총지휘를 통해 탄생한 명품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 이자벨마랑(2015년 봄·여름 시즌)

프랑크 뒤랑(52)의 직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창조감독’이다. 그가 하는 일은 이자벨마랑·발망·주세페자노티 등 패션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에 필요한 이미지 작업을 총지휘하는 것이다. 어느 사진작가에게 일을 맡길지, 모델은 어떤 포즈·표정을 취해야 하는지, 흑백·컬러사진 중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명품 여행잡지 ‘홀리데이’의 발행인이기도 한 그가 서울 특별판을 준비하기 위해 방한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말하는 ‘창의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발망(2014년 봄·여름 시즌)

이자벨마랑(2014년 가을~2016년 겨울 시즌).

사진 김춘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하는 일은 뭔가.“좋은 질문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힘들다. 어쨌든 ‘창조적인(creative)’도 ‘감독(director)’도 모두 중요한 말이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단순함(simplicity)과 미학(aesthetics)이다.”


-단순하기가 쉽나.“아마도 아니다. 늘 단순하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복잡하고 현란한 바로크(baroque)적인 것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있나.“물론 있다. 그들에게는 이미 많은 것도 아직 많은 게 아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에펠탑이 단순함의 좋은 예인가.“그렇다. 지극하게 금속의 기본 성질을 보여 주고 있다.”


-‘미학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사람이 어떤 효과를 일으켰는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 뭔가를 했는데 뭘 했는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자연을 정말로 사랑한다. 자연은 이미 아름답다. 그런데 사람이 뭔가를 자연에 추가해 자연이 ‘더’ 아름다워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이 뭘 했는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내가 생각하는 ‘미학적’이다.”


-어렵다. 다른 말로 한다면.“미적인 것은 ‘가볍게(soft)’ 일한 결과의 산물이다. ‘어렵게(hard)’ 일한 결과를 보이는 게 나는 싫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사람들은 창조적이 되기 위해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그렇다면 아무런 노력을 안 해도 절로 창조적이 되는가.“내 경우, 어디에 가건 어느 때이건, 항상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창조적 작업은 ‘정신으로 하는 체조(mental gymnastics)’라고 할 수 있다.”


-가정교육이 도움이 됐는가.“전혀 아니다. 아버지는 사업, 어머니는 회계를 했다. 어렸을 때 박물관에 다닌 것은 도움이 됐다.”


-이 업계에 투신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에 뭔가 더 역동적인 삶이 있다는 꿈을 꿨다. 뭔가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결과 성공했다. 제일 자랑스러운 성취는.“내가 성취한 것은 이것이다, 저것이다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내가 아틀리에 프랑크 뒤랑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 전체(the whole story)’가 나를 기쁘게 한다.”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나는 내가 싫은 것은 할 수 없다. 내 안에서 나오는 그 무엇, 뜨거운 정열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나는 열심히 일하지만 ‘내가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오면 싫다. 외압에 의해 내가 이런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느낌이 들면 의욕을 상실한다.”

-방한 목적은 ‘홀리데이’ 서울 특별판을 구상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그 어떤 것도 뭔가 기대하고 서울에 오진 않았다. 현재 내 마음은 ‘작업 과정(working process)’ 중이다. 이 과정은 조직적이지는 않다. 즉 사물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게 사물이건 감흥이건, 그것이 오면 나는 붙잡는다. 그런 다음에는 결과가 나온다.”


-서울 특별판은 언제 출간되나.“내년 3월·4월호로 나온다. ‘홀리데이’는 1년에 두 번 나온다. 현재 아르헨티나판을 작업하고 있다.”


-현재 신나는 일이라고 느끼는 게 있나.“몇 가지만을 열거하기에는 신나는 일이 너무 많다. 한 가지는 한국의 중앙미디어네트워크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이번에 ‘홀리데이’의 한국 특집을 위해 서울에 온 것도 포함된다. 매 순간이 신난다. 매 순간이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매 순간 도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틀리에 프랑크 뒤랑’의 사업이 날로 번창해 돈도 점점 더 많이 들어오겠다.“돈에 대해선 나는 모른다. 내게는 기업가마인드는 없다. ‘점점 더’는 맞다.”


-어떤 사람들은 일에 착수하기 전에 아주 많은 계획을 세운다. 임기응변이 당신의 방식인가.“아니다. 나는 계획을 세운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계획을 세우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나는 18세 때 바라던 것을 지금 갖고 있다. 나는 본능을 믿는다. 나는 내 방식으로 계획을 세운다.”


-무엇을 위한 계획인가.“더 좋은 삶,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계획이다.”-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말해 달라.“나는 가족이 필요하다. 가족은 내 인생의 기초다.”


-전원적인 가톨릭 기숙학교를 다녔다고 들었는데 요즘 성당에 나가나.“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간다.”


-신문·잡지를 포함해 인쇄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단순함(simplicity)·충격(impact)·우아함(elegance)이다.”


-유럽·미국의 잡지 시장은 괜찮나.“잡지는 거의 지구상에 사라지고 없는 공룡이라는 주장도 있다. 많은 사람이 공룡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터넷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것들, 예컨대 포맷이나 촉감을 안겨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위험 부담이 큰 잡지 시장이라는 ‘피 튀기는 동네(bloody field)’로 뛰어들었다.“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이야기다. 특히 우리 뒤에는 든든한 자금줄이 없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팽창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게 있다면.“우리가 개방된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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