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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바람둥이는 닮은꼴 … 위험 피하지 않고 즐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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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11면

잊을 만하면 정치인의 성(性) 스캔들이 터진다.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다.
섹스는 사생활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섹스 스캔들을 언론이 과연 보도할 필요가 있는지 논란이 멈추지 않는다.

‘매체 창간 빅뱅’으로 이미 룰이 깨진 지 오래지만 20세기 초반 미국 언론은 정치인의 프라이버시 보도를 금지하는 윤리강령을 채택했다.

지도자들의 성생활을 학문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는지 또한 의문이다. 최근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One Nation Under Sex)』은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책은 역사학의 입장에서 미국 대통령, 영부인, 상·하원 의원 등 지도자들의 성생활이 미국의 정치와 사회, 나아가서는 국제관계에 미친 영향을 밝혀냈다.
저자는 성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한 것으로 유명한 래리 플린트(73)와 데이비드 아이젠바흐(43) 박사다. 아이젠바흐 박사를 인터뷰했다. 그에 따르면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이 미국에도 적용된다.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학사(유럽 현대사)와 박사(미국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게이 파워』 『킹메이커』 등이 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공저자인 데이비드 아이젠바흐

-이 책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의 성생활을 다룬 책을 구상했다. 우선 이 주제에 대해 히스토리채널 프로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를 본 래리 플린트가 ‘나 또한 비슷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며 ‘책을 같이 쓰자’고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어떻게 집필 역할을 분담했나.
“우선 내가 한 장(章)을 쓸 때마다 래리에게 보내면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래리는 로스앤젤레스(LA), 나는 뉴욕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LA로 건너가 같이 원고를 수정했다. 그는 매우 뛰어난 편집자(editor)다. 역사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다. 아주 훌륭한 협업이었다.”

역사의 이면 고찰에 독자 반응 긍정적
-미국의 독자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나.
“대부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독자들은 대통령과 영부인의 사생활이 역사에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운 바 없고 사학자들이 중시하는 주제도 아니기에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영웅들을 이렇게 깎아내려도 되는가’ 하는 반응을 보인 독자들도 있다. 하지만 래리와 나는 정직하게 이 문제를 서술해야 한다는 집필 방침을 정했다. 우리의 목적은 누군가의 영웅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에이브러햄 링컨도 사생활이 있었다는 것, 그들의 사생활이 그들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책의 내용이 충격적이다.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이 한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식의 믿을 수 없는 사례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방대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주석도 꼼꼼하게 달렸다. 책의 몇 %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가.
“100% 확실하다. 모든 내용에 역사적 근거가 있게끔 책을 구성했다. 충분한 근거가 없기에 삭제한 내용도 있다. 역사학자들이 무시해온 주제이기는 하지만 튼튼한 학문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성적인 욕구가 강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고 생각한다. 특정 성격 유형의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직업에 끌린다. 그들은 위험을 좋아한다. 그들은 대중의 칭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타인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한다. 권력과 위험을 즐기는 야망가들은 여성들과의 위험한 관계도 좋아한다.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 책에 44명의 미국 대통령이 모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가정생활에 충실했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다수 대통령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대통령들의 경우에는 혼외정사를 했다.”

작은 사진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의 우리말 번역본 표지

-미국 지도자들의 사생활, 그리고 사생활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고 보는가. 지도자들이 언론의 감시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정에 충실하게 될 것인가.
“지도자들의 사생활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기술이나 사회가 어떻게 바뀌건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불륜 관계에 빠지는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다. 1998년 터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을 회고해보면, 미국의 사회와 정부는 스캔들에 2년간 몰두하느라 진짜 위협을 외면했다. 그 결과 2001년 9월 11일에 9·11테러가 발생했다. 엄청난 비극이다. 당시 미국민들은 나이브했다. 오랜 기간 대통령이 스캔들 처리에 몰두하도록 방치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스캔들이 아니라 테러 방지에 집중했어야 했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

-유럽인은 최고지도자들의 성생활에 대해 무심하거나 관대하다. 미국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가.
“그렇다. 미국인들은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성생활 스타일에 대해 더 관용적이 돼 가고 있다. 동성애자 간의 결혼이나 동성연애 자체에 대해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 타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덜한다. 언제 다시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터질지 모르지만 예컨대 르윈스키 스캔들 때와는 달리 더 많은 미국인이 도덕적 판단을 유보할 것이다.”

힐러리가 대통령 된다면 르윈스키 덕분
-존 에드거 후버 연방수사국(FBI) 초대 국장은 정치인들의 성매매 관련 정보를 틀어쥔 덕분에 48년간이나 국장 자리를 유지했다. 많은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성매매로 정치생명을 위협받았다. 매매춘이 합법이라면 그런 위험은 줄어들 텐데.
“흥미로운 사실은 성매매를 한 의원들일수록 발각되기 전까지는 ‘도덕군자’인 척했다는 점이다. 위선자들이다. 일부 지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에서 매매춘이 합법화될 가능성은 작다.”

-미국의 청교도 전통 때문인가.
“그렇다. 미국은 사실 굉장히 종교적인 나라다. 그래서 모순이 발생한다. 또 그래서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정치인들의 언행 불일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책에서 혼외정사 사례는 많이 나오지만 성폭행 사례는 없다.
“과문(寡聞)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성폭행 사례는 없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백악관 부보좌관이었던 빈스 포스터(1945~93)와 ‘깊은 관계’였다는 설이 대선 과정에서 다시 부각될 가능성은 없는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임기에 힐러리는 미국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별로 없었다. 대부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빈스 포스터와 힐러리 사이를 억측하는 설들이 제기됐다. 포스터가 자살하자 힐러리가 어떤 형태로든 자살과 관련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흥미롭게도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이후에는 미국인들이 힐러리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가 ‘희생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기가 치솟았다. 새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힐러리는 상원의원이 됐다. 이제 대권을 노리고 있다. 만약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르윈스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강조할 말이 있다면.
“섹스의 문제는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의 성문제는 항상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들의 성문제에 대해 실용주의적이 될 필요가 있다. ‘지도자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지도자가 스캔들 때문에 정무를 소홀히 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9·11테러 같은 참극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의 교훈이며,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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