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시국에 둔감한 정치|개헌의지 가시화 급선무|여야 실질회담 빨리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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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미나 쥐·뱀 등은 지진의 낌새를 미리 알아채고 집단이동으로 이를 피한다고 한다. 오늘의 시국상황이 「정치적 지진」 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은데도 정치는 이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노력이 미미하다.
여야 정치인들 스스로도 우려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의원들은 지도부에 대해 답답해 하고 6·10이후의 시국흐름이 통상요법으로는 수습될 수 없는 비상한 난국이기 때문에 대응발상의 코페르니쿠스 적 전회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있다.
물론 여야쌍방에는 파국을 필연적으로 몰고 올 극단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는 내심 대화와 협상을 통한 타협적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는 겉으로는 4·13고수와 철회를 고집하고 있지만 내막 적으로는 개헌문제가 다시 협상의 지평에 들어왔으면 따라서 그 매듭 을 여하히 푸느냐에 고심하는 인상이다. 특히 민정당 내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개헌논의를 재개해야한다는 논의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상당수 여당의원들은 드러내놓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4·13조치가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다는 뒤늦은 후회 속에 국민 여망에 부응키 위해서는 여당의 개헌의지를 가시화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당장 개헌협상을 해도 여야 간 개헌타협이 내년 2월의 정권교체에 지장을 주지않는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게 명백한 이상 4·13을 유지하는 선에서 국민과 야당을 설득·이해시킬 수 있는 건설 적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논의가 주류다.
9월까지 개헌협상이 완료되면 된다는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주장은 여당 측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줄 경우 가능한 방안이지 내각제 개헌일 경우엔 국회의원 선거법 협상의 난항이 예상되어 정권교체를 방해할 것이라는 논리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선거법 협상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더우기 의석수가 정권을 좌우하는 내각제하의 선거법 협상이 얼마나 지난할 것인가는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당 의원들은 4·13 연장선상에서 4·13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전면에 나서 정치력을 발휘, 차기 정부가 과도 정부임을 시인하고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개헌을 완료하겠다는 구체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당장 개헌 논의를 재개, 정권 교체에 지장을 안주는 물리적 시간이 허용하는 때까지 협상하도록 해보는 것도 한 방책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상당수는 안될 것을 뻔히 알면서 또 한번 국민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있다.
여당 의원들간에 비교적 현실감 있게 논의되는 타개방안으로는 88올림픽 이후 실시를 전제로 한 개헌 논의를 재개하되 서로가 장외로 나가지 않고 여권도 민주화 조치를 취하는 방안 88올림픽 이후 총선거에서 여야가 각기 의원 내각제와 대통령 직선제를 공약, 다수의석을 확보하는 정당 안을 13대 국회에서 89년까지 처리키로 하는 방안 등이다.
한 당직자는 『이 같은 모든 건설적 대안을 여야대표 회담에서 협상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다수 여당의원들은 또 여권으로부터의 민심배반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여권내의 비민주적 요소를 뼈를 깎는 아픔으로 과감히 하루 빨리 도려내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리고 물리력 대처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민주당 측은 4·13철회와 여야실질 대화,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내에도 『여 측에서 보면 4·13을 철회한 것이 아니지만 야의 입장에서 보면4·13을 철회한 것과 같은 방법을 찾아야한다』 는, 현실적으로 타협가능 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실적으로 타협 가능한 이런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실질대화가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전두환 대통령-김영삼 총재, 노태우-김영삼 회담이 이뤄져야 하고 그 회담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김 총재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어야 하며 그 관건은 김대중 씨의 사면·복권에 있다』 고 허경구 의원 등은 제시한다. 그럴 경우 김영삼 씨가 야권에서 행사할 수 있는 발언권이 강해지고 타협안을 수용시킬 힘이 생겨 실질문제 해결에 능동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김영삼 씨의 행동영역 확대를 위한 여건조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권 내에도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김대중 씨의 사면·복권에는 모두 부정적인 게 여권의 현실이다.
야당 측은 전 대통령과 김 총재의 회담이 열리면 설사 당장은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를 풀 발판은 마련될 것으로 보고있다.
따라서 온건파들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김 회담을 빨리 해야하며 피차 막후협상을 활성화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질협상이 이루어지면 민주당 측은 올림픽 직후의 개헌 또는 선택적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확실한 보장을 받고 현행 정치일정을 묵시적으로 수용하는 방안 등에 합의할 수도 있다는 견해다.
최형우 부총재는 『일단 직선제 개헌을 해놓고 올림픽을 치른 뒤 선거를 하고, 올릭픽은 철저한 과도내각이 치르도록 하며, 그럴 경우 내각은 노 대표가 맡아도 된다』 는 안을 제시한다.
일부 의원들은 김대중씨 문제만 해결되면 전 대통령·노 대표 및 두김씨가 올림픽때까지 정쟁지양을 선언하고 그때까지는 명실상부한 「과도내각」 을 운영토록 합의하는 것도 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한다.
여권이 4·13을 철회하고 김대중씨를 사면·복권시키는 대신 야권이 내각제를 수용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여야 할 것 없이 이대로 갈 수만은 없으며, 뭔가 돌파구를 열어야한다는 절박감은 매우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입을 모으고있다.
여는 민주화 조치의 과감한 시행과 개헌 시기 및 방법을 명시하고 야는 그에 따라 88올림픽 때까지 정쟁지양에 동의하는 길이 여야합의의 공통분모 같은데 『여당이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이 야당이 요구하는 최소한에도 못 미치는 게 오늘의 현실』 이다. 따라서 많은 의원들은 나름대로의 타개방안을 조심스럽게 논의하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관적인 것이 사실이다.
쌍방이 이대로 가다가는 파국을 자초, 「동반자살」 의「지진」 이 올 것을 뻔히 확신하면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협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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