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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픈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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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6 면

가수 김윤아(43)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톤의 니트 차림으로 나타났다. 14일 오후 서울 한남동, 4집 앨범 ‘타인의 고통’ 발매를 기념해 만난 자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소곤소곤했다. 노래 부를 때의 강한 눈빛, 밴드 자우림에서 시원하게 내지르던 보컬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자우림 멤버들을 “형님들”이라고 부르고 저음으로 웃을 때 빼고 말이다.


“솔로 음악은 자우림 안에서와 달리 진짜 제 마음 안에 있는 걸 꺼내기가 수월해요. 자우림 안에서는 ‘이건 너무 여자 관점의 이야기니까 하지 말자’고 스스로 검열했던 것 같아요.”


자우림이 아닌 김윤아의 이번 솔로 4집 앨범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풀어냈다. “만나는 팬들, SNS 통해 알게 되는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만들었어요. 내가 만약 학자금 대출 몇 천 만원이 있고 취업하기 힘들고 살 집이 없는 대학생이라면 어떨까. 막막했죠.”


그런데 앨범 제목 때문인지 노래마다 ‘세월호’를 포함한 여러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강은 흐르네 /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 누가 너의 손을 잡아줄까’(강) ‘다 지나간다 / 다 잊혀진다 / 상처는 아물어 / 언젠가는 꽃으로 피어난다’(다 지나간다) 등 구절구절 아프다. 노래를 들은 그의 9살짜리 아들이 “엄마 노래가 모두 슬퍼요”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세월호’가 연상된다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꼭 세월호를 생각하며 노래를 만든 건 아니지만 우리 마음에 그 사건이 죄의식처럼 남아 있어서 계속 떠올려지는 것 같아요.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너무 상처받았어요.”


개인적으로도 고통의 문턱을 넘나드는 시간을 보냈다. 2014년 초 자우림 9집 활동을 마무리하고 나서 부쩍 힘들었다고 한다. “여름 무렵부터 자우림의 히트곡인 ‘매직 카펫라이드’ ‘하하송’을 다른 사람 앞에서 부르는 저 자신이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말에는 첫 뮤지컬 도전작인 ‘레베카’의 공연을 앞두고 돌연 하차했다. 후두염으로 인한 발성장애가 왔기 때문이다. 그는 “원인도 알 수 없고 컨트롤할 수도 없는, 쇠 갈리는 소리와 덜덜 떨리는 소리가 목에서 나기 시작했다”며 “작품 하나를 못하게 되는 것도 두려운데 그 후를 장담할 수 없어 끔찍했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를 제 자리로 돌려놓은 것도 노래다. 수개월을 쉰 후 tvN 드라마 ‘시그널’?OST ‘길’을 노래했다. 목소리가 다 회복하지 않아 후렴구 화음을 다른 코러스로 대체해야 했지만 그는 그 노래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김윤아는 스스로 “슬픈 노래를 국내에서 가장 잘 부르는 가수”라고 말한다. 영화 ‘덕혜옹주’의 OST이자 엔딩 크레딧이었던 ‘작은 꽃’ 가창을 제안받았을 때도 그런 이유에서 좋았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우울한 노래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치과의사 겸 DJ로 활동하기도 한 남편 김형규와 행복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그인데도 말이다. 김윤아는 왜 슬픔에 더 끌리는 걸까.


“사람의 본질은 어릴 때 형성되는 것 같아요. 어릴 적 아버지외 그 형제들이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집에서는 어떤 면에선 죽음이 일상적이었어요. 그게 김윤아를 지배하니 당연히 제 음악으로 나올 수밖에 없죠. 슬픈 일이 주변에 있으면 금방 눈치채기도 해요. 그런데 행복하기 위해 노래가 필요해요. 어둡고 무거운 것을 계속 토해서 저를 가볍게 만듭니다. 무대에서 아픈 마음을 노래하면 청중이 공감해주죠. 엄청난 치유에요.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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