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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하인리히 법칙과 사소한 징후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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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18면

? VIP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사에서 리스크 관리를 하던 직원이었습니다. 보험사에 접수된 산업재해 데이타를 분석하던 그는 엄청난 대형 재해가 발생하는 데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1건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29번의 유사한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300번의 사소한 징후들이 발생하더라는 겁니다. 다시말해 큰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전에 엄청난 징후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데,이를 가볍게 넘기고 예방하지 못해 그만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얘깁니다. 경영학의 리스크 관리에서 1:29:300 법칙으로 잘 알려진,그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이죠.? 곱씹어보면, 자연재해조차도 우연한 대형 사고란 없는 것 같습니다.과학자들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는 지진이나 쓰나미가 발생하기 전에 물고기나 동물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등의 이상 징후들이 반복적으로 포착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역대급' 재앙으로 불리는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역시 근무자의 태만이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냉각수가 흘러나오는등의 사고가 있었다는게 뒤늦게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었죠.? 하인리히 법칙은 리스크 관리나 재난 예방 차원을 넘어서 사회·정치적 대형 사건을 설명하는 데도 딱 들어맞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대한민국을 추동해온 촛불 민심은 최순실 게이트를 예고한 크고 작은 '이상 징후'들을 가볍게 넘겨버렸거나 간과해온 재앙입니다. 우리는 다섯차례의 국회 청문회와 특검 수사등을 통해 '29번의 작은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징후'의 장면들을 '다시보기'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선명한 징후들은 우리의 망막을 자극해 잊혀진 기억을 되살립니다. 큰 가지 몇개는 아마 이런 것들일 것입니다. 비서실장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7시간'의 공백,유독 '공식일정 없음'이 잦았던 대통령의 스케줄,대면보고는 받지 않으면서 한밤 중에 장관·수석들과 전화통화를 해야했던 대통령,정윤회 십상시 문건사건을 돌연 '찌라시'로 규정짓고 문고리 3인방을 감싸고 돌았던 것 등등.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일'들이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을 잉태한 불행한 씨앗이었던 겁니다.? 여권은 경고를 무시해온 엄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국회 탄핵에 이어 집권당의 분당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오는 27일께 35명에서 40명가량의 의원들이 새누리당을 이탈하고 1월중 2차 탈당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보수정당에서 이런 대규모의 탈당이 이뤄지는 건 정부 수립이후 거의 초유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위 빅뱅에 비견되는 지각변동입니다.? 이쯤에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볼까요. 오늘의 빅뱅을 잉태한 이상징후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대통령은 비박계 지도부(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를 무력하게 만들고 대신 친박계 측근들과 밀실 협의를 즐겼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땐 '국기문란 행위'라며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공개 비난하고 결국 강제로 옷을 벗게했죠. 그것도 모자라 지난 총선땐 후보등록일 전날까지도 공천 발표를 하지 않는 고사작전 끝에 스스로 탈당케하는 비열한 작전을 썼습니다. 새누리당 '집토끼'조차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실망으로 치를 떨었지만 현실 안주에 급급한 새누리당은 오히려 친박-비박간 계파싸움에 몰입했습니다. 원내 과반에 한참 모자라는 122석,원내 제2당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는 보수세력이 던진 최후의 경고였지만 그들은 이마저도 귓등으로 흘려버렸던 것입니다.? 야당 사정도 그리 나아보이진 않습니다. 촛불 민심의 후광효과로 빚어진 착시 현상에 가리워져 '사소한 징후'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우선 야권 지도자들의 지지율이 20%대의 박스권에 갇혀 지체현상을 보이는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공정하지 않은 한국 사회를 개조해(Reset) 양극화를 해소하고 권력 분산,재벌 개혁과 같은 혁신에 나서라는 게 촛불 민심입니다. 이런 광장의 민의에 정치권이 응답하지 못한다면,계속되는 사소한 사건들과 징후를 무시하고 넘겨버린다면 촛불의 분노는 다시 정치권을 향해 폭풍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작은 경고 사인을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 #아듀 2016…촛불·도깨비·욜로? 이번주 중앙SUNDAY는 2016년 송년호로 제작됩니다. ? 올해 대한민국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현상을 촛불·도깨비·욜로(YOLO,You Only Live Once,한번뿐인 인생)라는 키워드로 분석했습니다. 우선,정치·사회적으로는 "한국의 모든 세대가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고 이것이 분노로 표출돼 대한민국 리뉴얼을 요구하고 있다"(김호기 연세대 교수)거나 "관료·언론·법조등 핵심 계층이 본분을 잊었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갈등을 제도화했다"(조장옥 서강대 교수)는 전문가 분석을 토대로 향후 Reset Korea의 방향과 구체적 과제들을 도출해봤습니다.? YOLO현상은 후회없이 인생을 즐기라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맞아떨어지면서 형성된 소비 트렌드를 반영합니다. 충동구매나 무분별한 한탕주의와는 구별되는 YOLO현상은 나를 위한 소비,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보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소비 흐름입니다.'소비 트렌트를 통해 본 2016년의 대한민국' 기사는 2017년 전략을 세우는데 유용한 팁이 될 것입니다.? 올 대중 문화 트렌드의 특징은 판타지 신드롬으로 요약됩니다. 판타지는 팍팍하고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며 현실도피의 욕구가 낳은 현상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24일)에까지 촛불을 들어야 하는 2016년의 현실을 판타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투영해봅니다.


? #미국 대사 부인 로빈 리퍼트 "세희 낳고 먹은 미역국,잊을수 없어요" ? 한국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아 로빈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부인을 인터뷰했습니다.2년반 동안의 한국 생활에서 두 아이(세준,세희)를 한국에서 낳고 기른 커리어 우먼이죠. 지난달 둘째 세희를 낳고 미역국을 처음 먹었다는데 "세준이 낳고도 미역국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고요. 두 아이에게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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