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풍지대' 공관 잇딴 성추문…외교부, 성폭력예방교육 강화 등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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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들의 성추문이 잇따르고 있다. 칠레에서 현지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박모 참사관에 대한 징계 절차가 시작된 가운데 중동 지역의 대사도 직원을 성희롱을 저지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중동 지역의 대사가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느냐”는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의 질문에 “내부적으로 그런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현직 대사가 성희롱으로 인해 감봉 징계를 받았다”며 “지난 8월 초 사건이 발생한 직후 외교부 차원에선 최초로 민간전문가들이 포함된 ‘성고충심의위원회’를 가동했으며, 해당 위원회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심사한 끝에 징계위원회에서 경징계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불거진 중남미와 중동은 외교가에서 소위 ‘무풍지대’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관련 사정에 밝은 외교가 소식통은 “긴급한 현안이 많지 않고 따라서 본국에 외교전문을 보낼 일 자체가 별로 없는 지역을 무풍지대라고 부르곤 한다”며 “이처럼 본부와 접촉이 뜸할 수록, 또 한국과 거리가 멀 수록 자신에 대한 감시가 약해진다고 느끼기 때문에 공관에 근무하는 직원들 기강이 좀 더 쉽게 느슨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칠레 같은 경우 중남미 지역 특유의 개방적인 문화, 한국과는 완전히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직원들이 좀 다른 느낌들을 갖는 경우들이 있다”고 전했다.

‘국가대표’나 마찬가지인 외교관들이 잇따라 성추문에 휩쌓이자 외교부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만으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지가 문제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밖에서 이야기도 듣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지만, 딱 떨어지는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라며 “공관 내보내기 전에 인성 검사를 하자고도 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박 참사관도 다면평가에서 같이 근무한 이들에게 받는 코멘트에서는 또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도 다 걸러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털어놨다.

또다른 당국자는 “일벌백계와 지속적인 주의 및 경고 발신으로 기강을 다잡고, 공관 근무 전에 국립외교원에서 하는 교육에서 성폭력 예방 관련 교육 이수 시간을 늘리는 방안 등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관련 사건 발생시 공관장에게 보다 엄하게 책임을 묻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칠레 사건 발생 직후인 21일 전 재외공관에 외교전문을 내려보내 “향후 공관원 비위가 발생할 경우 공관장이나 유사한 위치에 있는 상급자에게 지휘·감독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칠레 박 참사관에 대한 징계 수위는 다음주 초쯤 나올 전망이다. 외교부 감사관실은 그에 대한 중징계 의결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외교부 임성남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징계위원회가 곧 소집될 계획이다. 중징계의 종류에는 파면, 해임, 강등, 정직 등이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데다 현지 한류 인기에까지 악영향을 줄 우려가 큰 만큼 최소 공무원직을 상실하는 해임 징계 이상이 나와야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판을 피할 수 있단 게 외교부 안팎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런 의견들을 잘 알고 있고, 그에 따른 징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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