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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판 엘시티 이영복 회장 "국민참여재판 받지 않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 뉴시스

회삿돈 705억원을 빼돌리거나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엘시티 시행사 실질 소유주 이영복(66·구속기소)회장의 첫 재판이 21일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30분 부산법원종합청사 352호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옅은 하늘색 수의에 점퍼형 겨울 옷을 입은 이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부장판사를 향해 두 차례 인사를 하고, 검사를 향해서도 한 번 인사를 한 뒤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특가법상 횡령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청안건설 전 대표 박모(53)씨도 이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엘시티게이트’에 대한 전국적 관심을 반영하듯 법정에는 이 회장의 지인과 기자 등 30여 명이 재판을 참관했다.

재판장인 성익경 부장판사는 박씨와 이 회장 이름을 호명한 뒤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있는데 이용하겠냐”라고 물었다. 박씨가 “아니오”라고 답하자 이 회장은 “저도”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곧이어 검찰은 이 회장의 공소사실을 읽어나갔다. 검찰은 이 회장과 지난 8월께 구속기소된 박 전 대표가 2009년 4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엘시티PFV(이하 엘시티)의 자금을 관리하는 E개발에 허위 건설사업관리(CM) 용역을 발주하는 방법으로 군인공제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253억원을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이들이 2009년 4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인 D사에 허위 개발기획용역 발주 등의 방법으로 엘시티 출자금 14억3000만원을 빼돌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5년 6월부터 지난 6월까지 허위직원 등재, 장기대여금, 임시지급금 지급 등의 방법으로 청안건설 등의 자금 215억원을 빼돌렸고, 2011년 2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엘시티 자금을 관리하는 E개발에서 허위 엘시티 랜드마크 타워 설계용역 발주 등의 방법으로 부산은행 대출금 44억원을 편취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지난해 10월 엘시티 분양대행사 대표 최모씨(50·구속기소)와 공모해 엘시티 아파트 분양계약 체결을 유도하기 위해 분양권 127세대를 프리미엄을 덧붙여 대량으로 매집해 분양권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속였고, 과장된 분양계약률을 언론에 배포해 아파트를 공급하는 등 주택법을 위반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6월 분양권 매집 작업 중단 후 분양권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분양권을 매수하는데 사용한 돈이 몰취(민사 소송에서 법원이 일정한 물건의 소유권을 박탈해 국가에 귀속시키는 결정) 당할 상황에 이르자 분양자들로부터 계약금을 돌려달라는 집단 민원이 있어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속여 H신탁으로부터 민원해결비 명목으로 53억5000만원을 편취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이 회장이 지난해 10월 엘시티 사전예약자들에 앞서 지인과 가족 등에게 엘시티 아파트 43세대를 특혜분양 해줬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는 3분간 이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가끔 눈을 뜨고 재판장에 누가 왔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검찰의 기소요지 진술이 끝나자 검찰과 재판장은 재판과정에 필요한 증인신문 일정을 조율했다.

이 회장과 박 전 대표 측 변호인은 “E개발에 허위 건설사업관리(CM) 용역을 발주하는 방법으로 군인공제회 PF대출금 253억원을 편취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동의할 수 없다”며 “실제로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군인공제회, E개발 관계자 등 6명을 증인 신문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내년 1월23일 오전 10시 재판 때 이 회장 측의 변호인이 신청한 6명의 증인신문을 진행하겠다고 확정했다.

이날 재판은 10분 만에 끝났다. 이 회장은 법정에 들어설 때보다 긴장이 풀린 듯한 표정으로 재판장과 검사에게 한 차례씩 인사를 했다. 방청석으로 몸을 돌린 이 회장은 누군가와 눈인사를 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 회장과 박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취재진의 질문에 응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은 법정에서 말하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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