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만나 타협해야 한다|자기주장만 옳다고 말고 상대·현실여건 인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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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13후 거의 하루도 편할날 없이 시위·농성·단식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야당 소집의 국회를 여당이 외면하고 야당의원들은 단식농성을 벌이는등 정국긴강은 높아만 가고있다. 민정당전당대회, 야권의 규탄대회로 양쪽은 6·10격돌을 향해 그저 맹렬히 달려가고만 있을뿐 사태완화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논의도 보이지 않고있다.
정치와 정치인이 과연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우려가 국민들간에 점점 깊고 넓게번 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현역 여야정치인, 원로들, 그리고 학계, 경제계, 사회·문화계등 각계의 견해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탈출구 없는 격돌의 위기상황을 우려하면서 무조건 대화와 타협과 양보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6·10정국에 대해『막다른 골목, 벼랑끝에 와있다는 느낌』(김광웅교수·서울대) 들을 갖고 있다. 여야의 정치력으로 해결이 어려운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는 것이다.
대학의 분위기도 그동안의 관망에서 6·10결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라고 분석하고있다 (한흥수교수·연세대).
그리고 많은 인사들은 현재의 여야자세를 보면 격돌을 피할수 있는 길은 없는 것 같다는 지극히 우울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대부분 이제와서 여야가 격돌을 피하기 위한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본다(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회장).
『여당측의 4·13 조치가 있는 한 층돌은 피할수 없는 레일위에 놓여있는 것같다』(이기택의원·무소속)는 것이 야권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에대해 『정치일정을 백지화하라는 것은 여권이 도저히 수용할수 없다』는 것이 민정당 당직자들의 단호한 생각이다.
6·10 대회가 여야의 정면충돌사태로 끝나고 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일부 낙관론도 있지만 비관론이 우세하다.『전혀 우려할게 없다』(김재정·전구(전 공화당총무·샘터사장) 는 견해도 있긴하다.
그와 같은 충돌에서 오히려 대화의 필요성을 양측이 절감하고 자연스레 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있다. (이만섭국민당총재, 허경구민주당의원, 정종욱서울대교수). 심지어는『어차피 한판 붙고나야 말문이 터지지 않겠느냐』는 식의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극한 상황을 겪은후 『1백80도의 논리회전』(한흥수교수)이 가능하다는 역설적 낙관론이다.
그러나 상당수는 6·10 이후의 정국을 불안스럽게 보고 있다. 특히 야당의원들은『파국이 뻔하다』(고재청민주당의원,유갑종신민당의원)고 어두운 전망을 내리고있다. 『계엄령과 같은 사태』(김광웅교수)에 대한 걱정도 있다. 정치부재에 대한 국민들의 좌절감이 탈정치상대로 몰아넣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박실 민주당의원).
여당측도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긴 마찬가지다.『개헌논의의 재개 시점문제로 명분에 몰리고 정통성문제가 얽혀 괴롭고 힘든 정국이 될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이와같은 사태가 빚어지는 원인에 대해 여야 현역정치인들의 견해는 극단적으로 갈린다.야당측은『4·13조치의 일방적 강행때문』(최형우민주당부총재,정재문의원),『여당측이 물리적 힘만 믿고』(김완태의원),『민주화 열망을 외면하기 때문』(양정직민주당부층재)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대해 민정당측은『야당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탓』(현경대·김중위의원)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정치의 틀안에서 대안을 발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과격한 방법으로 대응하려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외의 인사들은 정치인들의 문제인식에 비판적이다.『근본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섬기겠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해서 이 같은 어려움이 생졌다』(안명기변호사)고 지적하고있다.
『전쟁하듯이 원수처럼 싸울게 아니다』(박은태미주산업회장)고 충고하고 었다.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 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가장 강력히 주강하는 측은 경제계다. 현재와 같은 가파른 대치형국이 계속되다가는『80년도와 같은 경제파국도 우려된다』는 걱정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정치때문에 잘 되어나가는 경제에 주름이 와서는 안되겠다 (이정우동서증권사장) 는 생각들이다.
그렇지만 난국 수습방안을 놓고는 국회해산론에서 정치일정 동결론까지 의견이 구구하다. 모두 여야의 양보와 타협을 주장한다.『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유일한 민의인양 내세우지말고 타협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어느 선에서 무슨 안을 놓고 타협해야할 것인지 누구나 공감할 현책은 제시하지 못하고있다.
문제해결의 바탕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신뢰회복, 민주화조치의 선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종철군고문치사 은페 조작사건등 현안해결에 발벗고 나서야하고(유성희서울의사회회장), 과감한 민주화조치로 야권주장의 일부를 수용하는 자세가 아쉽다(모증권사 L부사장)는 의견들이다.『강한 쪽에서 아량을 보여 약한 쪽의 것을 수렴해야 한다』(현석호씨)는 것이다.
야권은 문제해결의 관건이 4·13조치의 철회에 있다고 입을 모으지만 여당은 선뜻 이에 응하지 못한다.『섣불리4·13을 철회하고 개헌논의를 재개했다가는 혼란만 부채질하게 될것』(B의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민정당측은 주로 현행헌법에 따른 정치일정을 고수하는 선에서 대안을 제시하고있다.『개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유보한 것이며 88년이후 합의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자』 (이치호의원)는 의견들이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민정당측은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중요한 협상안으로 내고있다. 그들은 구체적인 개정방안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대통령선거법협상이 책임있는 여야대화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대부분은 이에 냉소적이다. 미국식과 똑같이 선거의 공정성이 보장되겠느냐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측의「공식적」안은 선택적 국민투표다. 동교동측은 사면·복권등 민주화 조치와 함께 거국내각을 구상하고있다(양정직부총재) .
만약 『직선제로 개헌할 것을 합의한다면 올림픽이후까지 거국내각을 구성해서 관리하고 기다릴수 있다』(최형우·박용만부총재)는 방책도 거론되고 있다. 또 단계적인 타협론도 있다. 즉 4·13을 철회하고 88년 2월까지 어떤 체제로 갈지 합의하고 그 이후 언제까지 개헌을 완료한다는 개헌시한을 설정하자는 식으로 합의해 나가자는 구상이다 (고재청의원) .
또 『한두달 정치일정을 현 상태에서 동결시켜두고 다시한번 협상을 시작하면 어떠냐』 (박준규전구공화당의장)는 의견도 나와 주목할만하다.
결국 만나서 대화해야한다는 문제로 귀착 된다. 『대화밖에는 방법이 없고 그길로 나갈것』 (김재정씨) 이라고 믿고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야당을 적으로 봐서도 안되고 대통령지명대회후의 민정당 현실도 인정해야 대화가 될 수 있다.『노태우대표도 자기의 구상과 포부를 필것이고 김영삼총재도 재야에 휘말려 무책임하게 굴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와같은 대화에는 무슨 조건이 있어서는 안된다고들 생각한다. 우선 『무조건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얘기하면 실마리가 풀릴수 있을것』(이만섭국민당총재) 이라고 기대하고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대화는 어느 쪽의 패배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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