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몽헌 회장 자살 파문] 鄭회장 유서 3통 분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신의 사무실에 남긴 세 통의 유서에는 대북사업을 포함한 각종 사업 실패에 대한 자책감과 가족을 걱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서는 현대그룹 마크가 찍힌 A4 크기 사내용 메모지에 자필로 작성됐으며, 가족 앞으로 두 장, 김윤규 사장과 불특정인 앞으로 한 장씩이 각각 봉투에 담겨 있었다.

일부 글씨는 판독하기 힘들 정도의 흘림체여서 鄭회장이 투신 직전 급히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윤규 사장에게 보내는 유서에서 鄭회장은 대북사업의 변함없는 추진을 당부했다. "명예회장님(故 정주영 회장)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을 모실 때 보면 저희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당신 너무 자주하는 윙크 버릇을 고치세요"라는 농담까지 곁들여 신뢰를 보였다. 실제 金사장은 평소 한쪽 눈을 자주 깜빡거리는 버릇이 있다.

겉봉투에 '○○(큰딸 지칭) 엄마'라고 적힌 유서에는 가장으로서 미안함이 배어 있다.

"○○ 엄마. 모든 것이 나의 잘못입니다. 당신에게 모든 짐만 남기는군요"라고 부인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자식들에게 "엄마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거라"고 당부했다.

자녀를 향해 "어리석은 아빠를 용서하기 바랍니다"로 시작하는 부분에서 鄭회장은 1남2녀인 자녀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안타까워 했다.

큰딸에게는 "오늘 보니 더 이뻐졌더군. 나 때문에 너의 생활이…사랑해", 둘째에겐 "너를 볼 때마다 어른이 돼 가는 것을 느끼는데…너는 굳건히 잘 살 거야"라고 적었다. 막내에겐 "너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구나"라고 썼다.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유서에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은 채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또 다른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군요. 여러분의 용서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유서 내용을 검토한 연세대 의대 정신과 이홍식 교수는 "鄭회장의 사회적 위치나 상황을 볼 때 충동적인 자살은 아닌 것으로 보이나, 특별한 (자살)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아 다소 의외"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극도의 죄의식과 분노.적개심 등을 승화시킨 영웅주의적 자살, 즉 모든 일을 자신이 안고 가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