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 된 민원서류와 쓰레기 봉투…“한글 몰라도 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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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남 영암경찰서 삼호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이달 초 전단(사진) 한 장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밀집해 생활하는 관내에서 오토바이 절도 사건이 잇따르자 아이디어를 내 제작한 전단이다. 한글을 잘 모르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전단을 보고 1초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외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전단을 맞춤형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관내에 중국·베트남·우즈베키스탄 등 10개국 이상의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상황에서 모든 국가 언어로 전단 제작이 어렵다고 판단해 설명 대신 사진 위주의 전단을 만들었다. 외국인들은 오토바이 뒷바퀴에 자물쇠가 채워진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 그리고 각 사진 아래 OX 표시를 보고 경찰의 메시지를 이해했다.

빠른 정착 돕고 문화 갈등 줄이려
사진·기호 등 활용해 소통 노력 중
외국인 느는데 지원 적어 아쉬움

외국인 밀집 지역인 영암과 음성에서는 독특한 맞춤형 공공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일시적인 지원 차원이 아닌 주민으로서 외국인의 정착을 돕기 위해서다.

영암군청에는 외국인 민원 안내 창구가 설치돼 있다. 4개 국어로 제작한 민원 서류 서식도 제공하고 있다. 영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 중 자신에게 편한 언어의 이혼신고서 등 각종 민원 서식을 골라 사용할 수 있다.

충북 음성군도 영어·중국어·베트남어·태국어·러시아어 등 5개 국어로 자동차 관리 안내서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관련 제도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차량 검사를 제때 받지 않아 과태료를 부과받는 일이 잇따라서다. 쓰레기 배출 방법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중국어 표기 종량제 봉투도 제작했다. 음성경찰서는 지난해 금왕읍에 외국인도움센터를 설치해 상담 및 민원 처리를 돕고 있다. 이 센터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별도 모임을 만들거나 지역 소식을 제공한다.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지난해부터 일요일마다 한국어 교실을 열고 있다.

다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주여성들처럼 이미 지역의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이들의 생활 및 자립을 전담하는 지방자치단체 내 관련 부서가 대부분 없고 지원금이 턱없이 모자라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실제 목포·영암외국인근로자문화지원센터에 대한 정부의 1년 지원금은 1명 인건비 수준인 3600만원 안팎이다. 이 센터를 운영하는 정봉선(57) 목사는 “다문화지원센터처럼 체계화해 외국인 근로자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방치하면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이 들 것”이라며 “도시와 농촌 지역간 지원금 차이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권·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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